"산고를 겪어 낳은 아이나 입양한 아이나 똑같은 우리 아이들이지요. 입양은 또 다른 출산일 뿐입니다."
선천성 뇌기형인 무뇌증을 앓고 있는 아영(5)이는 전순걸(43·외식업체 이사) 신주련(43)씨 부부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다. 생후 1년이 넘도록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던 아이가 이제는 눈짓으로 감정 표현도 하고 방긋방긋 웃기까지 한다. 아이가 어눌한 발음이지만 ‘언니’라고 말문을 열던 1년 전 어느날을 부부는 잊지 못한다.
"얼마 살지 못할 거라던 아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났네요. 오히려 아이에게 감사해야지요."
1987년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는 결혼 2년 만에 아들 현찬(17)이를 낳았다.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친의 사업 실패로 끼니도 못 챙기고 친척 집을 떠돌아야 했던 전씨에게 버려진 아이들 얘기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중에 돈을 벌면 꼭 보육원을 짓자고 약속했던 부부는 당장 아이를 한 명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98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첫째 딸 하영(7)이를 만났다. 하영이를 키울수록 아이들에게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깨달은 부부는 2년 뒤엔 생후 1개월 된 아영이를 다시 입양했다.
전씨 가족 품에 안긴 아영이는 생후 여섯 달이 되도록 몸을 뒤집지 못했다. 미숙아로 태어나 조금 늦되거니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상치가 않았다. 의약분업 파업대란으로 전국 병원이 들썩이던 때라 수소문 끝에 간신히 일산의 한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청천벽력이었다. "대학생이던 산모가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약을 먹은 탓인지 아영이는 우뇌가 없고 좌뇌도 상당 부분 빈 상태인 무뇌증이란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는 아영이가 정신지체로 말도 제대로 못하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거라라고 하더군요."
부부는 대전 집으로 내려오는 2시간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 부부는 두 손을 꼭 잡고 약속했다. "내 배가 아파 낳은 아이라면 장애가 있다고 버리겠는가. 입양하는 순간부터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니 평생 아이를 돌보자고 다짐했죠." 당시 대전의 한 호텔의 재무담당 이사로 일하던 전씨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나와 아영이의 치료에만 전념했다. 부부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내려 간 눈물어린 치료일기는 3년 전 ‘선물’이란 책으로 나왔다.
전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두 딸의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만나는 이마다 입양을 적극 추천한다. 아이들한테도 젖먹이 때부터 무릎에 앉혀놓고 동화를 들려주듯 입양사실을 알려줬다. "엄마랑 아빠는 하영이를 홀트란 곳에서 입양했어요. 직접 낳는 거랑 방법이 다르지만 하나님이 엄마에게 주신 소중한 아기랍니다"하는 식으로. 이 때문에 초등학생 1학년 큰 딸은 또래들 사이에서 본인의 입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부는 경제적인 이유로 또는 장애아란 이유로 자기 자식마저 쉽게 버리는 요즘 세태가 안타깝다. "가족은 사랑의 끈으로 이뤄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을 품에 안아야 합니다. 욕심이 지나칠지 모르지만 형편이 된다면 아이들을 더 입양하고 싶네요. 허허…."
전씨 부부는 입양문화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입양인의 날’인 11일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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