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내게 독일어는 나를 전 세계의 사람들과 연결시켜 주는 ‘만국 통용어’다. 여기서 나는 중국, 일본, 베트남, 대만 등에서 온 아시아인은 물론, 프랑스, 영국, 스페인, 헝가리 등 유럽인, 러시아, 터키, 그리스, 이집트, 수단, 모로코, 페루 등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모두 독일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보니 독일어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말 한 마디 나누어보지 못했을 이 다양한 나라의 많은 사람들과 서로 통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언어 같다.
나처럼 학업을 위해서건, 일 때문에 머무르는 직업인이건 타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방인이라는 자의식을 통해 같은 처지의 다른 외국인들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동류의식을 갖는다. 이러한 동류의식은 그러나 그들 사이의 서로 다른 피부색,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의 이질성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그저 막연한 동정으로만 머물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이질성과 차이를 넘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공통의 언어가 있을 때 비로소 동류의식은 하나의 구체적인 연대 감정으로 발전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공통의 언어는 그들을 이방인으로 만드는 바로 그 타국의 언어다.
언어가, 한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 공동체를 그와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구별시킴으로써 배타적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매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 인해 언어는 인종과 종교의 차이와 더불어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촉발하고 유지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는 또한 문화 간 대화와 이해의 매체로 기능하기도 한다. 반목하고 경쟁하며 눈을 흘길지도 몰랐을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태어나 자라난 곳의 모국어가 아니라 현재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통해 국경을 초월하는 연대감을 경험한다는 것이 좋은 예다. 여기서 언어는 배타와 차이가 아니라 결속과 통합의 역할을 한다.
케밥 가게의 맘 좋은 터키 아저씨는 독일인에겐 어림도 없는 덤을 아시아인에게 주기도 하고, 베트남 상점 아줌마는 외국인에겐 물건값을 깎아주기도 한다. 주말이면 집 앞 놀이터에선 불가리아의 빅키와 중국아이 올리버, 러시아 출신의 자미르, 포르투갈 태생인 아드리아나, 팔레스타인의 모하메드가 검은 머리칼을 가진 우리 아이들과 평화롭고 사이좋게 뛰논다. 집에선 각자 모국어를 쓰는 저 아이들을 서로 어울려 놀 수 있게 하는 것도 마법의 언어 독일어다.
김남시 독일 훔볼트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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