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관계를 맺는 남성이 있고, 여성 절반은 혼전성교를 경험했다. 26%의 여성이 혼외정사를 가졌으며 여성도 남성처럼 오르가슴을 탐닉한다.’
지금이야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고, 일부는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질 내용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킨제이 보고서’가 1948년과 53년 ‘인간에 있어서 남성의 성행위’와 ‘인간에 있어서 여성의 성행위’라는 이름으로 각각 발표 되었을 때 당시 언론의 표현대로 미국사회는 핵 폭탄이 떨어진 듯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킨제이 보고서’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았던 동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1894~1956, 리암 니슨)의 성장과 연구과정을 담아낸 전기 영화다.
영화는 "지퍼를 성적 타락을 유발한 최악의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지극히 보수적인 아버지(존 리스고우)까지 연구 대상으로 삼고, 성이라는 본능에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기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와 부하 연구원들까지 실험도구로 삼았던 킨제이의 연구 열정을 차분히 그려낸다. 감독은 카메라를 현미경 삼아 모든 연령과 직업, 지위에 걸쳐 1만2,000여명을 인터뷰했던 킨제이처럼 감정개입을 배제한 채 자연과학자의 시선을 철저히 유지한다.
그러나 전국적인 유명인사로 떠오른 킨제이가 선정적이며 부도덕한 인물로 몰려 사회로부터 외면 당했을 때의 고통과 고독까지 지나치게 객관적으로 다뤄 극적 구성에 있어서 밋밋한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갓 앤 몬스터’(1998)와 ‘시카고’(2003) 각본을 썼던 빌 콘돈의 감독 데뷔작. 콘돈은 이 영화로 미국 감독조합상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리암 니슨은 LA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3일 개봉. 18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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