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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맑은 웃음 속에 담긴‘놀이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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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맑은 웃음 속에 담긴‘놀이의 철학’

입력
200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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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오락 프로그램에는 게임마다 벌칙이 따른다. SBS ‘야심만만’의 그 유명한 바람 벌칙부터 KBS ‘일요일은 즐거워’의 악명 높던 물대포, 그리고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대단한 도전’의 물에 빠뜨리기까지. 이런 벌칙은 가볍게 시청자들을 웃기거나, 반대로 출연자들을 공포에 몰아넣어 어떻게든 게임에서 이기도록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MBC ‘전파 견문록’(사진)의 벌칙은 그 중에서도 독특하다. 공중에서 이산화탄소를 쏟아붓는 벌칙인데, 꽤 많은 양이 한꺼번에 쏟아져 출연자들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 하지만 밀가루 세례나 물벼락처럼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파 견문록’의 벌칙은 ‘야심만만’보다는 세지만, ‘대단한 도전’보다는 약하고, 가학성도 없다.

그래서 ‘전파 견문록’에서는 모든 것이 ‘놀이’가 된다. 벌칙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고, 게임방식도 내 팀과 상대 팀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회전퀴즈’는 두 팀 패널들이 똑같은 문제를 아이들에게 몸짓으로 설명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합심해 문제를 맞히도록 하고, ‘이미지 랭킹 내가 최고야’에서는 상대팀이 답을 맞힐 때까지 계속 이산화탄소를 맞아야 해 상대 팀의 선전을 바라게 된다. 대표 코너인 ‘순수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무엇에 대해 설명하면, 답을 맞히는 팀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답이 공개된다. 그리고 그 팀은 상대 팀의 힌트로 답을 맞혀야 한다. 서로 협력해야 하고, 그래서 승패의 의미는 그리 크지 않다. MC 이경규도 공정한 게임 진행보다는 지고 있는 팀에 훈수를 하고, 얄미운 팀을 일부러 방해하기도 한다.

게임은 함께 잘 놀기 위한 수단이고, 벌칙은 마치 아이들 흙장난 같은 것이다.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웃고 지나가면 그뿐이다. 그래서 ‘전파 견문록’에는 고유한 정체성이 있다. 프로그램이 표방하는 동심의 순수함을 어른들의 오락으로 구현하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 프로그램’ 말이다. ‘전파 견문록’이 지난 몇 년간 큰 변화 없이 계속 같은 시간대에 같은 진행자로도 부침 없는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개편 때마다 오락 프로그램들은 최고의 MC와 최대 규모를 앞세워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정말 장수하는 프로그램은,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즐겁게 할 것인가 하는 ‘철학’이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남을 오래도록 즐겁게 하는 건, 연예인의 출연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중문화평론가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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