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정보기술(IT)주가 모처럼 하락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전기전자 업종을 6일 602억원, 9일 542억원 순매수한 데 이어 10일에도 38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이 같은 IT 매수 열기는 국내 증시에 국한된 게 아니다. 외국인은 최근 대만 증시에서도 IT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대표적인 LCD 업체인 AU옵트로닉스(AUO)는 지난 주 연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인텔 노키아 등 세계적인 IT 기업의 주가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외국인이 IT주 매수에 적극 나서고 있는 배경으로 최근 바닥을 치고 올라선 LCD 및 반도체 가격을 꼽는다.
하지만 국내 IT 수출 모멘텀이 회복단계로 전환하려면 미국 등 선진국 경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 본격적인 IT 매수 단계로 보긴 어렵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10일 IT업종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최근 모니터용 LCD 패널가격이 바닥 확인 후 점차 상승하고 있으며, 2월 하순부터 급락했던 반도체 가격도 바닥을 다지며 반등을 시도하는 등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반도체 D램 가격에 대해서는 기술적 반등에 불과하며 하락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LCD 가격은 점진적인 상승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나증권 조용현 연구원은 "최근의 가격 상승세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전기전자업종의 상대 주가수익비율(PER)이 역사적 저점에 위치해 있어 저가 이점도 반영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원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LCD를 중심으로 일부 IT업체들의 실적 개선 가능성이 점쳐지자 외국인이 IT주 매집에 적극 뛰어든 것으로 추측했다. 허 연구원은 "대만 IT관련 기업들의 실적은 지난해 11월, 한국은 올해 초 바닥을 친 뒤 점차 개선되는 추세"라며 "과거 대만 IT주가 국내 IT주에 비해 먼저 바닥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중기적으로 IT주의 실적 호전 기대는 유효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IT주 매수를 실질적인 IT 업황 개선의 신호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허 연구원은 "외국인의 IT주에 대한 관심이 주로 패널 가격 상승과 함께 업황 개선 기대가 반영되고 있는 LCD 업체에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 대만 한국 등의 주요 IT업체 12개월 예상 주당순이익(EPS) 추정치를 보면, LG필립스LCD AUO 등 LCD 업체들의 실적 개선 전망만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IT 관련주에 대해 선별적인 대응은 유효하지만, 그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으므로 본격적인 IT 매수에 나서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하나증권 조용현 연구원도 "선진국의 경기회복 시기가 지연되고 있고 IT 수출이 다시 둔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외국인의 IT주 매수를 ‘추세적 매수’로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최근 외국인의 전기전자업종 집중 매수는 IT업종 전반의 개선이라는 ‘숲’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LCD 등 일부 품목의 개선이라는 ‘나무’를 겨냥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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