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정보는 모호할수록 가치를 발한다. 제한된 상황에서 얻어진 설익은 정보라면 정책의 목적에 부합하는 증거로 활용도가 더 커지는 역설이 통한다. 단단한 정보보다 과장과 비틀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암호명 ‘커브볼’로 불리는 한 망명자의 엉터리 정보가 이라크 공격 명분이 됐던 것은 정보와 정책의 관계를 일러주는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조지 W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하는 헛스윙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목표는 달성됐다.
폐허의 공장에 나뒹구는 포탄 탄피와 액체통이 엄청난 화학무기로 둔갑한 정보를 열심히 보도했던 뉴욕타임스는 후에 통절한 사과문을 냈지만 수천명의 미군과 이라크인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북한 함북 길주를 촬영한 미 인공위성 화상이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을 띄우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흘려진 화상정보에는 터널공사와 관측소 설치 장면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북한의 핵실험을 기정 사실화하는 주장이 빠르게 세를 불리고 있다.
물론 이 정보가 주는 대북한 경고의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의 긴박성이 부각되면서 정보의 질에 대한 검증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공위성 영상정보도 기만술의 발전으로 별 효용이 없다"는 3월 미 정보능력위원회의 보고서나 ‘금창리 땅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의 정보엔 따져 봐야 할 구석이 많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론까지 거론되는 등 정보가 핵 위기를 부풀리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의 핵 위협과 미국의 불확실한 정보 유출에 한반도가 볼모로 잡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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