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성향이 강한 중남미와 아랍국가들 간 정상회의가 사상 처음으로 10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개막됐다. 미국은 이 회의가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성토장이 될 것을 우려,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하겠다고 비공식 요청했으나 주최국 브라질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는 2003년 중동순방에 나섰던 남미 좌파의 좌장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이틀 일정으로 열리는 회의에는 중남미 12개국과 아랍권 22개국 정상 또는 대표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친미성향이 강한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정상들이 참석하지 않고 대표만을 파견해 반쪽 정상회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정상회의에서는 중동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견제가 핵심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공식적으로는 경제교류가 거의 없던 두 지역 간 경제블록화 구축이 목표이지만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동맹이 심도있게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로이터 통신은 "중남미는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반면 중동국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 중동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정치협력을 요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9일 열린 양측 장관 회의에서 나온 성명도 이를 시사하고 있다. 이 성명은 모든 형태의 테러에 반대하고 타국에 의해 영토가 침탈됐을 경우 국민들은 이에 저항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어서 헤즈볼라와 같은 무장세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우려섞인 시각이다.
경제교류 분야에서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와 걸프협력회의(GCC) 간 자유무역지대 창설이 주 의제다. 브라질 외교관계자는 "원유수출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GCC 국가들이 인프라 구축과 에너지, 관광 분야 등에 대한 외국 자본의 투자를 적극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경우 지난해 아랍권과의 통상 규모는 81억 달러로 3년 내 150억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브라질리아 연방대학 국제관계학과 아르제미로 프로코피오 교수는 "미국과 유럽이 문화적으로 공존관계에 있는 것과는 달리 중남미와 아랍권은 지금까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새로운 문명과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도 이번 회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