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후보 3팀의 ‘반란 삼국지’가 2005 프로야구 무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9연승으로 단독 선두를 질주하는 두산, 4년 꼴찌의 저주에서 벗어나 갈매기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롯데, 무명의 ‘낙엽줄 스타’들을 배출하고 있는 한화. 삼성과 함께 4강 체제를 이끌고 있는 이들 3팀은 개막 직전만 해도 바닥을 헤맬 팀들로 꼽혔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자신들을 하대(?)했던 강호를 연파하며 훨훨 날고 있다. 반란의 주모자는 누구일까.
오심까지 겹치는 불운으로 4연패에 빠졌던 지난달 26일 잠실 한화전. 경기가 끝난 뒤 김경문(47) 두산 감독은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자율훈련을 자청해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을 외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면서 "기죽지 마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후 김 감독의 책상용 달력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9개째 그려지고 있다.
김 감독은 자신의 역할을 어머니에 비유했다. 못난 자식일수록 다독여서 힘을 내도록 품어주는 것이 모성애다. 김 감독은 늘상 "선수들이 모두 똘똘 뭉친 결과"라며 공을 ‘자식(선수)’들에게 돌린다. 5일 LG와의 잠실전. 2-3으로 패색이 짙던 9회말 2사 만루에서 홍성흔은 더그아웃으로 자꾸 눈길을 보냈다. 20타수 무안타의 부진에 빠져있었던 만큼 대타 기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망이를 고쳐 잡은 홍성흔은 역전 적시타로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스포츠심리학 석사인 양상문(44) 롯데 감독의 리더십은 철저한 동기부여로 시작된다. 투수 이용훈은 롯데 입단 이후 2년간 1승에 불과했지만 양 감독으로부터 "네 공은 아무도 칠 수 없다"는 과분한 칭찬을 인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 성공암시가 ‘미완의 대기’였던 이용훈을 올 시즌 탈삼진 1위(44개)와 다승 2위(4승)에 올려놓는 마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사령탑을 맡자마자 양 감독은 가장 군기가 세다는 롯데 선수들에게 염색을 허용했다. 패배의식과 규율에 주눅이 든 선수들의 기를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양 감독은 또 이전까지 감독의 입김에 휘둘리던 부문별 코치들에게 전권을 넘겼다. 선수들은 이런 양 감독을 ‘큰 형님’으로 믿고 따른다. 누구도 다루기 힘들다는 ‘야생마’ 노장진을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길들인 것도 양 감독의 리더십이다.
‘재활용 공장장’으로 통하는 한화 김인식(56) 감독의 리더십은 산그늘 같은 부성애에서 출발한다. 선수들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김 감독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버지의 칭찬을 한번 더 듣기 위해 더욱 열심히 뛴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김 감독은 지난해 기아에서 방출된 김인철을 데려와 팀의 간판타자(3할1푼3리, 6홈런)로 길러냈다. 부상으로 은퇴와 복귀를 오고갔던 프로 15년차 지연규에게도 최고의 마무리투수로서 새 야구인생을 열어주고 있다. 김 감독은 최근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풍운아’ 조성민까지 집으로 끌어들였다.
세 감독의 공통점은 모두 덕장(德將)이라는 점.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무장한 이들은 가족 같은 믿음과 칭찬으로 선수들의 숨은 에너지를 이끌어내면서 반란을 주도하고 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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