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지만 유럽은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 러시아가 세계 화합을 내건 승전 6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지만, 드러난 것은 전쟁에 대한 첨예한 시각차다. 옛 소련연방을 구성했던 국가들은 ‘친 서방’과 ‘친 러시아’ 노선으로 양분됐고, 독일과 폴란드는 과거사에 대한 평가를 놓고 국론이 두쪽으로 갈라졌다.
◆ CIS의 분열 = 8일 열린 독립국가연합(CIS) 정상회담에서는 옛 소련을 구성했던 국가들의 갈등이 그대로 드러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안한 회담에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은 불참을 선언했다. 이들 국가는 ‘반 러시아’ 노선을 표방하며 1997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과 함께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국가 발전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구암(GUUAM)’이라는 새로운 협의체를 출범시킨 후 러시아의 지역패권을 막아 왔다. 우즈베키스탄은 99년 추가로 가입했다.
특히 그루지야는 2003년 무혈 시민혁명(벨벳혁명)으로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이 축출된 후 줄곧 러시아에 반기를 들며 친 서방 노선을 취해 왔다. 미하일 사카쉬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그루지야의 기지 두 곳에서 철수하지 않고 있다"며 "승전 기념행사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회담은 1시간 30분만에 ‘인문 분야 협력 선언’만 하고 허무하게 끝났다. CIS는 러시아를 비롯해 구 소련연방을 구성했던 공화국 12개국이 1991년 12월 협력강화를 위해 출범시킨 정치공동체다.
반면 벨로루시는 친 러시아 노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믿을 곳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4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인권탄압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벨로루시를 ‘폭정의 전초기지’ ‘유럽에 남은 마지막 독재국가’로 부르고 있다. 벨로루시 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칼리모프 대통령도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연대를 강화하는 중이다.
◆ 독일과 폴란드의 내부 갈등 = 독일은 극우주의 신(新)나치 세력과 이들의 발호를 막으려는 시민단체와 진보세력의 대립으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를 추종하는 극우 나치세력인 국가민주당(NPD)과 머리를 빡빡 깎은 스킨헤드족 등 3,000여 명은 8일 옛 동베를린의 심장부인 알렉산더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에 맞서 1만여 명의 시민과 좌파단체가 반대시위를 벌여 충돌 직전까지 갔다. 경찰 6,000여 명이 양측을 갈라놓아 충돌은 겨우 막았지만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NPD는 "지난 60년간 미국 등이 나치가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2차대전의 책임을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나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이날 하원 의회연설에서 나치 과거사를 재차 반성하면서 "나치의 만행으로 유대인 600만 명 이상이 희생 됐다"며 "독일은 2차대전의 끔찍한 추억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 소련의 세력권에 놓였던 폴란드도 진통을 겪고 있다. 알렉산드르 크바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승전 6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러시아를 방문하자 국론이 두 쪽이 난 것이다. 폴란드 국민의 상당수는 1940년 소련군이 폴란드 장교와 사회지도급 인사 2만여 명을 학살한 ‘카틴 숲 사건’에 대해 러시아가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왜 나치와 같은 전범인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느냐는 비난도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폴란드 정부는 ‘반 러시아’로 비쳐지는 것을 우려하고 외교무대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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