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기대했던 내수 개선효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환율하락분이 대부분 치솟는 국제유가에 상쇄되어 버린데다, 그나마 국내소비보다는 해외소비만 진작시키는 역효과마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미 달러화의 약세행진이 본격화한 작년 10월이후 원·달러 환율은 현재까지 13%가량 떨어진 상태. 1,100원대 중반에서 반년 만에 900원대 후반으로 달러당 150원 이상 하락했다.
본래 환율이 떨어지면(원화가치 상승) 수입물가하락→인플레안정→개인 구매력 개선→소비지출증가의 연쇄반응이 나타나야 옳다. 정부와 한국은행도 환율하락이 수출에는 부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내수측면에선 이런 선순환 고리를 형성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개인소비는 여전히 답보상태이고 내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 소비지표인 도·소매판매는 환율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올 2월까지도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왔다. 3월들어 모처럼 플러스(1.3%)로 반전됐지만 두자릿수에 달하는 환율하락폭에 비하면 ‘감질’나는 수준이 아닐 수 없다.
환율하락이 내수개선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은 유가불안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작년 말 배럴당 40달러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텍사스중질유 기준)는 올들어 재반등, 4월엔 57달러선까지 뜀박질했으며 현재도 여전히 50달러선을 웃돌고 있다. 환율하락으로 기대됐던 국내 물가안정은 유가폭등으로 완전히 증발해 버렸으며, 이로 인해 개인들도 열려고 했던 지갑을 다시 닫게 된 것이다.
"과거 같은 고환율 상황이었다면 유가상승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최악의 내수국면을 연출했을 것"이란 평가도 있지만, 다른 일각에선 "환율급락으로 중소수출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돼 연쇄적으로 내수도 더 어려워질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율하락으로 늘어난 개인 구매력이 해외에서 소진되고 있는 점도 국내 소비진작효과를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지루한 마이너스행진을 거듭해온 국내소비와는 달리 해외여행지급액은 작년 11월 전년 동월대비 31.9%나 늘어난 것을 비롯, 올 3월까지 4개월 연속 20%대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유학 연수 같은 해외교육비 지급액도 마찬가지다. 결국 개인들은 현재 환율 하락폭 이상으로 해외에서 돈을 쓰고 있으며, 이는 해외소비가 국내소비를 잠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환율하락이 국내 구매력을 빼앗아 해외구매력만 늘려주는 역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한은 관계자는 "환율하락이 별다른 내수개선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유가 같은 대외경제적 문제와 소비증대를 가로막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제약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대로라면 환율이 더 떨어져도 국내소비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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