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살이 일체가 돌이킬 수 없는 이야기들뿐이라 하지만 만회나 재기 혹은 패자 부활전과 같이 고쳐 볼 수 있는 기회 또한 살다 보면 오기 마련. 때를 놓쳐 학업을 못 이뤘다면 만학도가 되어 정열을 태워 볼 수 있고, 상대 팀에게 진 경기는 아쉽지만 다음 시즌을 기다릴 수 있다. 세상에 딱 하나 다시 못 할 일이란 먼저 가신 내 부모 살려 내는 일 뿐이니. 생활이 바빠서 몸이 불편 하신 외할머니를 맘껏 뫼시지 못하다가 안타깝게 보내셔야 했던 우리 엄마. 엄마는 집에 살림이 조금 더 나아질 때마다 "엄마 있으면 이제는 잘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라고 했다. 당시 열 살 남짓 이었던 내가 생각을 해 보아도 그랬다. 아빠가 과장에서 부장이 되고, 엄마가 한 마리만 사 주던 통닭을 두 마리 사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외할머니를 되 살려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계절은 다시 돌아 오고 꽃도 다시 피는데, 사람은 가면 다시 안 온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 모듬회밥과 조개국물
어버이날이라고 효도 관광 상품이다, 특선 메뉴다 판을 치는데 여건상 많은 것을 해 드릴 수 없다면 별식이라도 한 끼 차려드리자. 고슬고슬 밥을 지어 식초와 설탕, 소금으로 밑간 해서 한 김을 뺀다. 여기에 고급 생선은 아니더라도 슬쩍 양념한 냉동 횟감을 올리면 되는데, 영양도 맛도 어지간하다.
특히나 기온이 올라 입맛을 잃은 분들에게는 톡 쏘는 고추냉이와 새콤한 식초, 고소한 참기름에 버무려진 회 맛이 새로울 듯. 물론 마트의 생선 코너에 장식 된 광어며 연어처럼 매끈 싱싱한 회를 올려 주면 더 고급스럽겠지만, 5,000원 내외로 구입이 가능한 냉동 참치에 도톰하게 계란 하나 부치고 1,500원짜리 소라살을 쪄서 얇게 썰어 올리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바지락 한 줌 사서 멀건 국물을 내면 회밥에 곁들이기 알맞다. 이 인분 기준으로 10,000원 안팎 든다.
◆ 건 자두 돼지구이와 복분자주
고기를 즐기시는 어르신께는 그저 촉촉히 구운 돼지고기 한 점에 과실주 한잔이면 선물이 따로 필요 없다. 지방질이 덜 하고 몸 해독에 탁월한 돼지고기를 프랑스 가정식으로 요리해 보자. 장점 많은 식재료지만 속살이 다소 뻑뻑 한 게 흠이라 삼겹, 오겹으로 기름이 둘러지지 않은 이상 많이 먹기에 무리가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건조된 과일이나 버섯 같은 재료를 목살이나 안심에 끼워 넣고 굽는다. 오븐에서 한 시간 남짓 로스팅을 해야만 제대로 구워 지는 것이 흠이지만, 가스레인지에 딸려 있는 오븐을 써 볼 기회가 없었다면 시도해 봄 직하다. 우선 목살을 썰지 않은 덩어리째 사 온다. 건과일 코너에 가면 말린 자두, 말린 무화과, 말린 살구 등을 살 수 있으니 취향대로 예산대로 고르고, 내키지 않으면 말린 밤이나 대추 혹은 말린 표고나 미삼(尾蔘)으로 대체 하여도 좋다.
고기 덩어리에 칼집을 깊이 만들어 그 속에 준비된 재료를 꾹 눌러 박고, 고기 겉면에는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 다음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서 겉만 굽고 완성은 오븐에서 한다. 천천히 구워지면서 마른 과일 속 수분이 흘러나와 그 즙과 향이 뻑뻑한 고기 결에 배이니 그 맛이 담백하고 향그럽다. 약주 좋아하시는 어르신이면 복분자주 한 잔 빼 놓을 수 없겠다. 특히 마른 자두를 넣고 구웠을 때는 복분자주의 짙은 과실향과 겹쳐진다.
◆ 김치 크림 파스타와 마늘빵
햄버거도 잘 드시고 외화를 즐겨 보시는 신식 부모님들을 위한 요리, 파스타다. 파스타 한 묶음이면 500그램으로 세 명 정도가 먹기 좋은 양인데, 먼저 그것을 삶는다. 그리고 잘게 썬 김치에 크림을 부어 졸인 매콤 고소한 소스에 볶아 내는 초간단 요리다. 다진 마늘에 버터를 섞어서 얇게 썬 빵에 바르고 팬이나 토스터에 구우면 바삭한 마늘빵이 만들어 지니, 국수 요리 한 곁에 곁들이면 푸짐하겠다. 국수가 3,500원, 크림이 2,000원 안팎이니 마늘빵용 바게트를 1,500원에 구입해도 10,000원이 채 안 든다. 여유를 부려 팽이버섯을 크림 소스에 섞으면 모양이 예쁘다. 레스토랑으로 부모님을 모실 형편이 아니어도 이 정도 정성이면 아마 감동해 주실 거다.
그렇다. "엄마, 내가 성공하면(혹은 시집 잘 가면 혹은 로또에 당첨되면) 꼭 효도할게요"라는 말은 공중에 흩어지면 그 뿐, 아무런 기억도 남겨주지 않는다. 기약 없는 만찬보다는 당장에 후룩 끓여드리는 라면 한 입이 부모님에게는 더 진하다. 자두를 넣은 목살 구이든, 500원짜리 카스테라든 오늘 당장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날 낳고 키우느라 고생한 엄마 아빠께 시름만 잔뜩 안겨 주다가 시집가는 필자가 자책하듯 쓰는 말이다. 당신들 사랑한다고.
푸드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 모듬 회밥
냉동 참치 200g, 밥 2공기, 소라 2개, 양념(간장 1큰술, 설탕1/2큰술, 식초1/2큰술, 고추냉이, 참기름)
1 소라는 살짝 쪄두고 냉동 횟감은 해동한다.
2 양념을 잘 섞어서 1을 버무린 다음 10분 이상 냉장한다.
3 밥은 식초, 설탕, 소금으로 버무려 밑간 한다.
4 그릇에 밥을 담고 2를 올린다.
●달걀 지단, 찐 새우등을 올려도 좋다.
◆ 건 자두 돼지 로스트
목살300g, 건 자두(혹은 기타 말린 과일)70g, 소금, 후추, 버터 약간.
1 목살에 깊은 칼집을 내어 건 자두를 넣는다.
2 실로 고기를 고정해서 구워지는 동안 자두가 빠져나오지 않도록 한다.
3 2의 고기 표면에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4 팬에 약간의 기름과 소량의 버터를 달군 후 3의 고기를 겉만 바싹 굽는다.
5 4를 은박지로 꼭 싸서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고 35~45분 굽는다.
●고기를 구운 팬에 다진 양파와 야채를 볶다가 복분자주를 붓고 통후추를 띄워 조려내면 소스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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