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에 몰아치고 있는 갈등의 파고가 예사롭지 않다. 일본의 독도 및 센카쿠(尖閣)섬 영유권 주장과 왜곡된 역사·공민 교과서 검인정으로 한·중·일 국민 사이에 적개심이 고조되고 외교관계도 악화일로에 있다. 한국일보는 고려대 개교 100주년 기념 세계 대학총장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일본 도쿄(東京)대 키리노 유타카(桐野豊) 부총장과 중국 지린(吉林)대 저우치펑(周其鳳) 총장, 총장 포럼을 주최한 고려대의 이광현 부총장을 초청, 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동북아 갈등의 치유와 대학개혁’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동북아 3개국을 대표하는 명문대의 총장과 부총장들은 한결같이 한·중·일 대학간 협력을 통해 서로 이해를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이슈를 적극 개발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이은호 사회부 차장 leeeunho@hk.co.kr
_동북아 3개국 사이에 깊어진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많은 사람들이 막막해 하고 있다.
저우치펑= 대학이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장이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지린대는 역사·지리적 이유 때문에 한국 유학생들이 가장 많아 1년 이상 장기체류하는 학생이 600명쯤 된다. 이들은 중국 일본뿐 아니라 북한 학생들과도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우의를 다지고 있다. 나는 생활 속에서 동북아 교류·협력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 학생들이 동북아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이광현= 지금 세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미국 독주체제이지만 적어도 2010년께부터는 동북아시대가 올 것으로 확신한다. 한·중·일 3개국이 미국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3국이 저마다 독특성을 갖고 있어 협력이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대학이 중심이 돼 함께 추구해야 할 공동선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동북아시대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다. 가장 부담 없이 상호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분야가 학문 분야가 아닌가.
키리노= 최근 일본의 교과서 문제 등으로 동북아 국가들의 대립이 심해져 이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굉장히 곤란한 질문이다. 답변할 적절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웃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계화 고령화 환경 같은 문제들은 국제협력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라는 점이다. 한·중·일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이런 문제들을 각 대학의 지식역량을 함께 동원해 해결한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저우치펑= 중국도 개혁·개방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오랜 기간 외부세계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서로의 실상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오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도처에 잠복해 있는 오해와 갈등의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문제해결을 모색해가는 데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_개교 100주년을 맞은 고려대가 ‘제2의 창학’을 선언하며 21세기에 걸맞은 대학으로의 위상 재정립을 위해 각종 발전계획을 내놓고 있는 것처럼 중국과 일본의 대학에서도 개혁이 화두가 돼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우치펑= 중국 대학개혁의 화두는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대학의 대중화’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중국 학생 100명 중 평균 1명 정도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좀 나아져 고교 졸업자의 19% 정도가 대학에 입학하지만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키리노= 도쿄대도 혁명을 겪고 있다. 지난해 국립대에서 독립법인으로 바뀐 것이다. 이전에는 문부과학성 산하였지만 이젠 독립된 조직이 돼 총장의 권한이 강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정의 대부분을 정부에 기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연간 2,000억엔(2조원)의 예산 가운데 1,100억엔을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반면, 외부에서 끌어오는 자금은 500억엔에 불과하다. 하바드대가 매년 2조5,000억엔씩 기금을 걷어들이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광현=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이라는 고려대의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이다. 한국의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여서 총장에서부터 교수까지 나서 기금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려대가 지난 2년 동안 2,200억원을 모아 대학 가운데 랭킹 1위였다.
저우치펑= 중국은 국가가 운영하는 대학들이 대부분인데 정부 지원이 넉넉치 않아 학교를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키기에는 제한이 따른다. 이 때문에 정부는 역점 대학 몇 군데를 선정해 대학개혁을 추진하는 211프로젝트와 985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11프로젝트는 21세기를 맞아 100개 대학을 선정해 대학별로 하나의 역점부문을 집중 육성한다는 의미이며, 985 프로젝트는 1998년 5월4일 베이징(北京)대 100주년 기념일에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이 역점대학 선정을 강조한 것을 계기로 211 프로젝트 대학 중 30개 학교를 엄선해 지원강도를 높이는 정책이다. 현재 지린대 베이징대 등이 985 프로젝트 대상에 속해 있다.
_한국에서는 대학입시와 사교육비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과 일본은 어떤가.
저우치펑= 중국의 중고생들도 굉장히 고생이 많다. 중국은 현재 ‘1가정 1자녀’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지금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이다. 이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를 명문대 인기학과에 보내려고 한다. 고교생들은 학교공부가 끝난 뒤에도 엄청난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며 과외를 받는 경우도 많다. 중국은 한국보다 인구가 많고 대학은 턱 없이 부족해 입시와 사교육비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키리노= 일본은 인구의 40%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고, 이 비율은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다. 10년 전에는 한해 고교졸업생이 200만명이나 됐지만 현재는 출산율 저하로 110만명 정도로 줄었다. 앞으로 2~3년 내에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과 대학정원이 같아질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은 경쟁이 아주 심하지만 20~3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약해졌다. 전체적으로 일본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좋은 대학을 가야만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많이 엷어졌다.
이광현= 우리나라도 그런 문화가 생겨야 하는데 참 부럽다.
키리노= 하지만 고도의 지식을 획득하려는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_한국에서는 조기유학 열풍이 뜨겁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유학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키리노= 초등학교 때부터? 굉장하다. 일본의 해외유학은 대부분 대학이나 대학원이다. 시골에서 도쿄대에 오는 비용과 해외로 유학 가는 비용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세계 대학으로 가는 것이 꼭 나쁘지 만은 않지만 자국 교육이 공동화해서는 안 된다.
저우치펑= 중국도 중학교 때 유학 가는 경우가 많다. 자국 언어나 문화도 모르는 부잣집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외국에서 돈 쓰는 법만 배워와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
이광현= 고려대는 조만간 수업의 50%를 영어로 강의할 계획이다. 그냥 생활영어 하는 학생이 아니라 현지 취업이 가능한 학생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교육내용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대학들이 노력한다면 조기유학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좌담자 약력
●키리노 유타카 도쿄대 부총장
▦1944년 에히메 출생 ▦1972년 도쿄대 약학부 박사 ▦1975년 미 카네기멜론대 박사 ▦1975년 도쿄대 약학부 조교수 ▦1993년 도쿄대 대학원 생물물리학 교수 ▦2001년 도쿄대 약학부 대학원장 ▦2005년 도쿄대 부총장
●저우치펑 지린대 총장
▦1947년 후난성 려우양시 출생 ▦1970년 베이징대 화학과 졸업 ▦1970년 베이징대 강의 ▦1983년 미 매사추세츠대 박사 ▦1986년 베이징대 부교수 ▦1999년 중국과학원 회원 ▦2004년 지린대 총장
●이광현 고려대 부총장
▦1953년 서울 출생 ▦1976년 고려대 불문과 졸업 ▦1986년 프랑스 리용대 경영학 박사 ▦1986년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 강사 ▦1986년 고려대 경상대 교수 ▦1997년 고려대 산업개발연구소장 ▦2005년 고려대 서창캠퍼스 부총장
정리=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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