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 오르한 파묵/ 이스탄불서 떠오른 소설巨星
‘오르한 파묵 경찰서에 가다!’ 터키의 유수한 모 일간지에서 이러한 제목의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당시 오르한 파묵이 이스탄불 근교의 집필실에서 고양이와 함께 지내던 중, 그 고양이가 옆집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바람에 이웃과 언쟁을 벌이다 경찰서까지 가게 됐다는 것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터키 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다.
오르한 파묵은 1952년 터키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대학교를 중퇴한 뒤 전업 작가가 된다. 1979년 발표한 장편소설 ‘제브뎃 씨와 아들들’로 밀리엣 신문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문학계에 입문한다. 이 소설은 82년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이듬해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다시 수상한다. 같은 해 소설 ‘고요한 집’으로 마다랄르 소설상을 수상했고, 91년 프랑스에서 유럽 발견상을 수상한다. 85년에 발표한 소설 ‘하얀 성’으로 그의 명성은 국제적으로 확산된다. 동고동락하는 동양인과 서양인 두 주인공을 내세워 터키의 정체성 문제를 첨예하게 다룬 이 작품이 발표되자 뉴욕타임즈는 "동양에 새 별이 떠올랐다"며 그를 극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 그는 언론에 얼굴을 내미는 것조차 주저하는 작가였다. 심지어 터키의 어떤 잡지는 그를 "작품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작가" 라고 평하기도 했다. 90년 발표한 소설 ‘흑서(黑書)’는 복잡한 구성 때문에 터키 문학계에서 많은 논쟁이 일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는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꼬리표를 단 후 국내외 유수의 문학상을 탔고, 영화 ‘비밀의 얼굴’ 시나리오 등을 쓰면서 세계 언론의 초점이 되었다.
98년에 발표한 ‘내 이름은 빨강’은 현재 33개국어로 번역됐고, 2002년 프랑스 최우수 외국 문학상, 2003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 2003년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을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가로 거론되기 시작한다. ‘내 이름은 빨강’은 동양과 서양이 함께 이루어 낸 오스만제국의 위대한 도시 이스탄불을 무대로 한 세밀화가들의 음모와 배반, 그리고 목숨을 건 사랑 이야기이다. 2002년 소설 ‘눈(雪)’을 발표했으며, 2003년에는 자전적 에세이집 ‘이스탄불-추억들 그리고 도시’를 발표했다. 소설 ‘눈’은 현재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2004년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이 소설은 처녀들의 자살 사건을 통해, 이슬람 문화와 서구 문화, 이슬람 근본주의와 세속주의간의 유혈 충돌을 다루고 있다. 폭설로 길이 차단된 터키의 국경 도시 카르스에서 사흘 만에 막을 내린 국지적인 쿠데타를 커다란 줄기로 삼아 전개되고 있는 이 소설은 신과 인간, 종교와 정치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설경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현재 오르한 파묵은 ‘눈’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듯이 소설 ‘순수 박물관’을 집필 중이다. 어떤 내용이냐는 질문에 그는, 비밀이라며 ‘멋진 사랑 이야기’라고만 귀띔했다.
이난아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 케냐 은구기와 시옹오/ 아프리카 민중의 아픔 천착
케냐 키쿠유족 농민의 아들로 성장한 은구기와 시옹오(Ngugi wa Thiong’o 1938~)는 반서구적 네그리튀드(Negrituide·흑인성) 정신으로 무장한, 아프리카어권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작가다.
35년 전, 나이로비의 교회에서 강연 도중 "나는 교회의 사람도, 크리스찬도 아닙니다"라는 발언을 하자 한 노인이 "당신의 이름 제임스 은구기(James Ngugi) 중에 제임스는 서구식 이름이니 이게 바로 기독교인임을 말해주는 증거이지 않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날 이후 그는 은구기와 시옹오라는 순수 아프리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우간다의 마케레레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은구기는 이미 대학시절 창작에 몰두해 소설 ‘아이야 울지마라‘(1964) ‘사이에 흐르는 강’(1965)을 비롯하여 희곡 ‘검은 은둔자’(1968) 등을 쓴다. 하지만 그는 식민지 교육의 편향성을 간파하고, 아프리카 작가회의에 참여한 아체베, 소잉카, 오키보, 클라크 등 많은 작가들을 통해 아프리카적 상황과 작가적 역할과 사명감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영국 리즈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른 은구기는 제3세계권의 급진적인 문학작품을 접하게 되고 특히 프란츠 파농을 통해 흑인문제의 본질을 절감한다. 귀국 후 나이로비 대학 영문과에서 강의를 하지만 1969년 학생들의 반정부데모로 인한 휴교령에 항의해 은구기는 학교를 떠난다.
그는 문학이 그 사회의 모든 영역을 날카롭게 파헤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구기의 모든 작품은 픽션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현실에 충실하다. 그의 작품소재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경험 속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아프리카 민중들의 문제이다. 케냐 현실을 고발한 소설 ‘피의 꽃잎’(1977)은 글로 쓴 폭탄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고, 키쿠유어로 쓴 희곡 ‘결혼하고 싶을 때 결혼해요’를 직접 연출 공연하던 중 독재정권의 미움을 사 1년여 간 투옥되기도 했다. 반기독교적 성향도 뚜렷해, 에세이집 ‘교회, 문화 그리고 정치’에서 기독교는 지배계층과 영합하여 인간으로서 삶의 비전을 추구하려는 아프리카 민중의 요구를 거부하고 지배계층의 안전과 현상 안주의 방패역할만 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귀향’에서는, 만일 교회가 자본주의를 거부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소비적이고 비인간적인 면이 노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은구기는 아프리카의 현실이나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두고,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나 아프리카의 대지와 식물 공기에 이르는 배경 등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작가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세계를 관류하는 작가정신은 진정한 의미의 우후루(Uhuru:자유, 독립)에 도달하기 위해선 부단한 저항과 자기희생이 요구된다는 메시지다. 참 우후루를 얻기까지엔 아이는 결코 울어서는 안 된다.
김윤진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어과 교수
■ 佛 르클레지오/ 몽환적 극사실주의 추구
르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 니스에서 출생했다.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국의 브리스틀대학, 런던대학, 프랑스의 니스대학에서 수학. 23세였던 1963년에 발표한 처녀작 ‘조서(調書)’가 르노도상을 받으면서 그야말로 혜성처럼 프랑스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현존하는 최고의 프랑스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들으면서 30여권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 성공적인 문학 생애를 이끌어왔다. 매스컴에 별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뛰어난 외모 때문에 신비감을 더한다.
그의 초기작은 대체로 극도의 긴장감과 함께 쓰여진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조서’는 누보 로망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지만, 문제의식의 치열함과 형이상학적 긴장은 여타 누보 로망 작가들과 일정한 차이를 드러낸다. 주인공 아담 폴로는 스스로를 완전한 무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세계의 물화(物化)에 저항한다. 아무런 동기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그의 이상한 행동은 고대 예언자들의 행적을 닮아 있다. 그는 정신병원에 갇히기 전 마치 의도한 듯, 군중의 증오를 촉발시키는 시적 예언을 쏟아낸다. 정신병동에 갇힌 이후에 보여주는 주인공의 행적은 지성의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지성의 과잉을 드러낸다.
작가 자신이 ‘유사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글쓰기 방식은 몽환적인 하이퍼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만하다. 주인공은 아주 사소한 외부의 디테일들을 내면의 장에서 극대로 부풀려서, 현존의 물질성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인식은 존재의 ‘물질적 있음’ 앞에서 그 전적인 무능력을 고백한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서 작가는 산업사회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세계관을 드러낸다.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완전한 광물 상태, 있음의 물질적 압도성으로 돌아가게 한다. 당연히 언어는 사라진다. 따라서, 이 지독한 탐색은 일정 부분 묵시록적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이러한 특징은 두 번째 작품 ‘홍수’에서 더 극단적으로 추구된다.
그러나 80년 ‘사막’에서부터 그의 작품은 변하기 시작한다. 문장은 투명하고 소박해지고, 지적 긴장은 신화적, 영적 울림으로 변한다. 혹자는 예상 외라고 하지만 이런 변화는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다. 눈앞의 물질적 현존과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투쟁할 당시에도 르클레지오는 이미 신화적이었다. 자신을 완전히 무화시켜 원소의 세계로까지 환원시키는 행위는 신화적 세계관의 실현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작가는 개인적 주체를 강화하기 위해서 언어를 붙잡고 투쟁하던 자리에서 상호주체(타자/자연과의 소통에 기반한)의 자리로, 언어가 구성하는 지성의 자리에서 언어를 넘어서는 영적 직관의 자리로 옮겨왔을 뿐이다.
최근의 작업은 동방적 원시성을 추구하는 방향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동양인의 관점에서 이는 서구인에게 익숙한 도피처인 오리엔탈리즘을 드러내는 손쉬운 해결책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초기의 치열하던 르클레지오에게 충격을 받았던 독자들이라면 더더욱 이 변화는 ‘너무 쉬운 결론’으로 느껴진다.
김정란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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