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앞에서 시인 소설가가 목놓아 운다. 심지어 추기경도 울먹이고 있다. 그러니 ‘어머니’라는 말 앞에 끝내 범연할 수 있는 이는 없는 것일까.
김종해(64) 김종철(58) 형제시인이 어머니의 15주기를 맞아 시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문학수첩)를 냈다. 또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예술가 연예인 등 13명은 산문집 ‘사랑합니다 내게 하나뿐인 당신’(옹기장이)을 함께 냈다.
두 시인의 어머니는 부산 충무동 시장 어귀에서 떡 팔고 국수 팔고 녹두전 부쳐 술 팔아 4남매를 키운 분이다. "맷돌을 돌린다/ 숟가락으로 흘려넣은 물녹두/ 우리 전가족이 무게를 얹고 힘주어 돌린다/…우리들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오직/ 어머니의 맷돌일 뿐/ 어머니는 밤낮으로 울타리로 서서/ 우리들의 슬픔을 막고/ 북풍을 막는다/…"(김종해 ‘어머니의 맷돌’) "입 하나 더 느는 가난보다/ 뱃속 아이 줄이는 편이 수월"해 새벽마다 만삭의 배를 쓰다듬으며 조선간장을 몰래 마셨던 "어머니 젖에서는 조선간장 냄새가 났"고, 그렇게 살다 가신 어머니의 가난에 시인은 "조선간장보다 더 짜고 고독"한 울음을 운다.(김종철 ‘조선간장’)
김수환 추기경은 8남매 태어난 곳이 모두 다른 그 가난의 유랑시절, 곡마단 천막 바깥에 앉아 국화빵을 굽고 집 나간 형을 찾아 포목 행상을 하며 세 차례나 만주를 떠돌던 어머니의 모습을 잔잔히 회고한다.
그다지 살가운 아들이진 못했던 듯한 연극인 이윤택(국립극단 예술감독)씨는 어머니의 잔소리 같던 ‘삶의 이바구 테이프’ 수십 개를 문학적·연극적으로 형상화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어머니의 일상 언어는 특유한 리듬이 있었고, 간간이 한숨과 울음과 음울한 노랫가락까지 곁들여지면서 듣는 사람을 꼼짝 못하게 붙들어 두는 긴장이 있었다. 글을 모르는 억센 경상도 할머니의 입담이 엮어내는 ‘이바구’는 우리말의 리듬과 장단과 박자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항적이고 냉소적이고 "겁 없이 타락의 경계까지 가보고자 했던" 젊은 날 소설가 최윤(서강대 교수)씨에게는 "딸의 삶에 아주 최소한으로 개입"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아주 짧게, 그러나 내 인생의 항로가 바뀔 만큼 개입"했던 어머니가 있었고, 수년 전 라면 CF를 찍었던 방송인 이홍렬씨에게는 자식들에게 라면 끼니조차 챙겨주지 못해 애면글면했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네들에게 가신 ‘어머니’는 기억의 경계를 넘어 바람이 되고 햇살이 되고 하늘도 된다. ‘어머니’의 그 신화적 편재성(遍在性)이 곧 현실 부재(不在)의 다른 이름이고 보면, 글로 시로 부르는 어머니는 이미 그들만의 어머니가 아니다.
소설가 한승원씨는 서문에 "부부간에 생이별을 하게 되면 환장하게 좋았던 일들만 새록새록 떠올라 목 놓아 슬피 울고, 부모 자식 간에 생이별을 하면 궂은 일들만 굽이굽이 떠올라 통회(痛悔)하면서 운다" 고 썼다. "아아 엄마 하면/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인 것을!"(김종철 ‘엄마 엄마 엄마’)
어느새, 곁이 부담스러워지는 5월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