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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바람 민주주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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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바람 민주주의’의 한계

입력
200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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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왔다가 사라지는 바람/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날 울려놓고 가는 바람."

여당에게 23-0의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 준 4·30 재보궐 선거 결과는 또 한번 ‘바람 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바람을 가사의 소재로 다룬 대중가요들이 잘 보여주듯이, 바람의 특성은 언제 어디서 왔다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예측불가성과 한번 불었다 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는 쏠림 현상이다. 바람의 그런 속성에 의해 판세가 좌우되는 선거를 가리켜 ‘바람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바람 민주주의’는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다. 민주적인 정권을 염원했던 유권자들은 모든 종류의 선거를 ‘정권 만들기’와 연결시켰다. 이런 투표 행태를 가리켜 "막대기만 꽂아 놓아도 당선된다"는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그런 투표 행태가 민주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에 일조했고 그렇게 비아냥을 한 사람들도 그 수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또 다른 바람을 불러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망정 기존 정권 지키기에 나선 유권자들도 바람으로 대응했다. 그래서 전국에 걸쳐 ‘과잉 정치화’와 ‘네거티브 투표 행태’가 만연했다. 혐오감이나 적대감이 투표의 주요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민주화된 이후 세상이 크게 달라진 만큼 투표 행태도 달라지면 좋으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미 존재해 왔던 초강력 중앙 집권 체제가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내는 엔진으로 작동했다. 노무현 정권 들어 강력한 지방 분권 드라이브가 걸렸지만, 그것이 완료되기까진 중앙 권력의 지역별 배분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오히려 중앙 권력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과도기적 역설이 발생했다.

게다가 여당은 과거의 ‘민주화’ 구호를 ‘개혁’ 구호로 대체하여 ‘바람 민주주의’를 부추기는 데에 앞장섰다. 독자적인 지역 정치의 중요성을 역설해야 할 여당은 나름대론 유권자의 속성을 꿰뚫어본 노회함을 발휘한답시고 모든 선거를 중앙 권력과 연결시키는 선거 전략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건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여당은 ‘미래’를 팔고 싶었겠지만,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지역을 떠나 중앙 권력에 대한 현재완료형 판단을 내린 것이다.

모든 지역 정치를 중앙 정치에 귀속시키는 ‘바람 민주주의’엔 언론도 일조했다. 언론은 흥행사, 아니 바람잡이의 역할이었다. 중앙 신문과 방송은 서울 지방 언론에 불과하지만 전국을 장악하여 전국민의 눈과 귀를 여의도에만 붙들어매는 역할을 해 왔다. 전국의 지역 정치를 여의도 식민지 체제로 종속시키는 심리 상태를 조성하는 데에 맹활약을 해온 것이다.

‘바람 민주주의’는 정당 간 이해득실 차원을 떠나 정치가 민생에 기여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바람은 어차피 이쪽으로 불다가도 저쪽으로 부는 것인 만큼 영원한 수혜자도 피해자도 없다. 4·30 결과에 대해 여당 대변인은 "표심은 신성하다"고 논평하는 바람직한 자세를 보였지만, 그건 정치적 수사일 뿐 표심은 신성하게까지 생각할 건 아니다. 그건 지난해 4·15 총선 결과가 신성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이 바람의 포로로 잡혀 있는 민주주의를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 시절 민주화를 위해 ‘바람 민주주의’가 불가피한 점이 있었다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내내 그런 비상시국의 정서로 운영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여당은 4·30 결과를 보고 뼈를 깎는 자성과 혁신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바람 민주주의’가 이대로 좋은지 더욱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성찰은 여당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정치권과 더불어 언론과 유권자들이 동시에 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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