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부부가 일심동체라고 해도 투표도 같은 후보에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도 보통 억지가 아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최근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에 쓴 자기반성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홍 의원이 이혼의 위기까지 겪었던 체험을 전한 것이어서 당연한 논리임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홍 의원의 고향은 경남 창녕이고 부인은 전북 부안 출신이다.
그가 전한 바에 따르면 검사 시절인 1987년, 대선을 앞두고 홍 의원 부부는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홍 의원은 김영삼 후보를, 부인은 김대중 후보를 찍겠다고 한 것이다. 저녁마다 언쟁을 거듭하다가 갈라서자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
집안이 엉망이 되자 홍 의원 부부는 선거 하루 전날 타협을 모색했다. 홍 의원이 "부부는 일심동체라는데 따로 투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둘 다 물러설 상황이 아니니 제3의 후보인 신정일 후보를 찍자"고 제의, 부인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러나 부인은 김대중 후보를 찍어 약속을 어겼고 홍 의원은 그 사실을 8년 후에야 알았다고 한다.
이 일화처럼 과거 선거에서 국민의 6, 7할은 찍을 후보를 미리 갖고 있었다. 그 정당이나 후보가 잘했느냐, 잘못했느냐는 묻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국민 다수가 정치적 사고를 고정시켜놓고 있으니 정치도 그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옳고 그름은 뒷전이고 지역 정서만을 따르는 정치가 횡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등 소수세력의 지도자가 연거푸 대통령이 되고 17대 국회에 젊은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입성하면서 한국 정치의 고정성은 크게 흔들렸다.
4·30 재보선 결과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많은 유권자들이 과거처럼 그냥 투표장에 가서 맨 날 찍던 정당을 또 찍던 고정성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행정도시를 갖다 주면 당연히 표를 찍을 것으로 믿었던 여권의 오만한 사고에 충청도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아무나 꽂으면 된다는 한나라당의 자만에 경북 영천 사람들은 비록 낙선했지만 열린우리당 후보에 무려 48.7%를 주면서 경고했다. 전남 목포 시민들도 민주당과 우리당에 엇비슷한 표를 주었다.
지금 유권자들은 이것 저것 많이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표심을 미리 예단하기도 쉽지 않고 사후에 "이래서 이랬다"는 명쾌한 분석을 내놓기도 어렵다. 그만큼 국민도, 정치도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이다. 지역에 따라 지지정당, 지지후보가 정해지는 고정성이 깨질수록 한국 정치는 나아지는 것이다. 참고로 지금 홍 의원의 부인은 한나라당 지지자라고 한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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