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4·30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경북 영천에서 패배해 지역주의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 민주노동당이 성남 중원에서 승리, 수도권에 진보벨트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막판에 역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여름에 언 동치미 국물 한 사발을 마신 것처럼 속이 다 시원하다. 국민이 정치 개혁을 하라고 국회 다수 의석을 만들어 준 뒤 채 1년도 되지 않아 원칙이란 원칙은 모두 저버린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 열린우리당이 6개 국회의원 선거구를 포함해 후보를 낸 23개 선거구에서 단 한 곳도 이기지 못하고 완패했기 때문이다.
후보자의 민주적 경선이라는 정당 혁명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충청 지역 철새정치인들의 낙하산식 공천과 영입에서부터 돈 봉투 사건, 기업도시 건설과 같은 공약 남발 등 17대 총선의 선거 혁명을 모두 다 던져버린 열린우리당의 행태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싫다. 주목할 것은 열린우리당이 선거 과정에서 승리지상주의에 의해 그 동안 주장해 온 원칙을 다 버리고도 완패했다는 사실이다. 승리지상주의에 의해 원칙을 버렸으면 승리라는 실리라도 챙기거나, 아니면 원칙이라도 지켜 명분이라도 얻었어야 했는데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니 원칙을 지켰더라면 오히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승리라는 실리까지 얻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선거 전략을 넘어 국정 운영 차원에서 이번 참패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수구 언론들은 선거 결과가 문희상 체제로 상징되는 실용주의 때문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실용주의로 선회하기 전에 주로 보여 온 이념갈등과 개혁지상주의, 이에 따른 경제침체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개혁 언론의 경우 개혁 입법 실패로 상징되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에 대한 심판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두 상반된 분석은 다 맞고 현실은 이 두 분석이 결합된 최악의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이 보여주었듯이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과 총리가 직접 나서 폼이란 폼은 다 잡으며 냉전세력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함으로써 불필요하게 이들을 자극하고 온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그러나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 결과 적지 않은 국민들은 "경제가 어려운데 국가보안법을 없앤다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느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개혁 세력은 개혁 세력대로 노무현 정부가 개혁을 배신했다며 등을 돌린 것이다. 다시 말해, 내용은 없으면서 소리만 시끄러운 ‘빈 수레의 개혁’과 관련해 일부는 시끄러움 때문에, 개혁 세력은 내용이 없는 비어있음 때문에 등을 돌린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조용하면서도 내용은 꽉 찬 개혁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노무현 정부가 살 길이다. 그래도 한 가지 열린우리당에 다행스러운 일이 있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재보궐선거 불패의 신화를 이어감으로써 자만에 빠지고 더욱 더 자기 개혁에 게을러질 것이며 그 결과 2008년 대선에서도 한번 더 패배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선거 결과가 하도 엄청나 이 같은 결과가 한나라당에 작은 승리를 선물해 3년 뒤의 큰 전쟁에서 또 다시 지게 만들기 위한 열린우리당의 미끼 내지 음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충청 지역 거물정치인들을 낙하산식으로 영입할 당시 열린우리당은 당명을 열린철새당으로 바꿔 신장개업하라는 ‘축! 열린철새당’이라는 칼럼을 바로 이 지면에 쓴 바 있다(4월 5일자). 그러나 그러한 철새정치의 결과가 기껏 23대 0의 참패라면, 이번에는 초상집 분위기에 어울리는 "근조! 열린철새당"이라는 화환을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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