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조로 버텼습니다."
세계적 산악인 박영석씨는 2003년 2월 산이 아닌 얼음땅에 처음 도전장을 내밀었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한 그가 마지막 남은 지구 3극점에 도전, 산악그랜드슬램을 이루기 위해서다.
북극점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한 그 해 4월 말 그는 원정 길 절반을 갔으나 악천후와 부상 등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쓰라린 경험이었지만 박씨는 2004년 1월 남극점에 깃발을 꽂은 데 이어 마침내 1일 북극점에도 도달, 세계 산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번이 북극점 마지막 도전"이라고 각오를 밝힌 박씨는 3월9일 북위 83도에 위치한 워드헌트를 떠나 본격적으로 두 발에 의지해 탐험 길에 나선 지 54일만에 북극점에 도착했다. 잠을 줄이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하루 평균 12시간, 15㎞ 이상을 걷는 강행군 끝에 예정보다 6일 정도를 앞당겼다.
워드헌트에서 북극점까지의 거리는 775㎞. 그러나 박씨를 비롯한 모두 4명의 원정대가 실제 걸은 거리는 2배 이상이다. 리드(얼음이 갈라져 바닷물이 드러난 곳), 난빙대(얼음산), 크레바스(빙하지대의 갈라진 틈) 등을 피해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섭씨 영하 40~50도의 강추위와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인 블리자드 속에서 맨몸으로 걸어간 것도 아니다. 각자 100㎏의 썰매를 끌고 설원을 가로질렀다.
원정 길에서 갑자기 리드에 빠진 것도 부지기수. 얼음바다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위험한 데다 젖은 옷을 말리자면 꼬박 하루를 움직이지 못하고 텐트 안에 묶여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얼음이 이동하는 북극의 특성상 전진해도 뒤로 밀리는 일도 겪었다.
몸 상태가 정상일 리는 만무했다. 박씨는 허벅지에 동상을 입고, 홍성택씨는 발목에 피로골절 증세를 보였다. 정찬일씨는 동상으로 코에 물집이 잡혔고, 박씨와 홍씨는 햇빛이 눈에 반사돼 잘 보이지 않는 설맹(雪盲) 증세까지 겪으며 악전고투했다.
탐험 막바지에 기온이 높아져 동상 증세가 악화되지 않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박씨가 첫번째 도전 실패를 거울삼아 옷과 신발을 직접 디자인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박씨는 "산악그랜드슬램을 한국인이 최초로 달성했다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한국인의 기상을 떨쳐 기쁘다"고 말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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