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폭군’이라고 부른 것은 북핵 문제가 대결상태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처럼 들린다. 6자회담 재개 성사를 위한 압박이 구사되는 것은 그래도 협상 국면이라고 하겠지만 이제 협상의 틀이 무너지는 소리가 그의 말 속에서 들리는 느낌이다. 북미뿐 아니라 6자회담의 나머지 당사국들 사이도 최악의 갈등 속에 놓인 시점이라 문제는 문자 그대로 난마(亂麻)가 돼 가는 것 같다.
■ 6자회담의 갈등구조는 한·중·일 3국의 관계 악화와 크고 작게, 직·간접으로 얽혀 있다. 그런데 이는 다시 국가간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국내정치 운용과도 긴밀하게 뒤엉킨다. 각자가 상황의 앞뒤와 속셈을 읽는 방식이 다 다르고, 추구하는 이득도 각색(各色)이다. 여기엔 접점 없는 과거사와 민족주의가 있고, 아시아 권력재편을 향한 세력 다툼의 본격화라는 사정이 깔려 있다. 시간과 공간, 정서와 힘의 문제가 한 곳으로 부딪치고 있으니 어려워도 보통 어려운 형국이 아니다.
■ 지금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미국의 선택이다. 북한에 대한 선택만이 아니다. 한·중·일 3국이 미국과 관련된 불안정 요인과 취약성을 갖고 있다. 미국이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일본은 완전한 고립에 빠지게 되고, 중국은 미국이 일본과 봉쇄적 견제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 또 한국은 일본이 미국을 업고 패권을 행사하는 것을 역사적 체질적으로 용인하지 못한다. 3국의 불안정한 맹점은 또 있다. 일련의 사태가 모두 집권세력의 국내정치에 동원, 이용되는 속사정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 고이즈미 정권의 우파 고취, 노무현 정권의 진보좌파적 지향, 대중불만을 무마하는 수단으로서의 중국 정부의 행동들이 상호관계 일탈을 가속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 발 떨어져 자기의 입장을 갖고 이 지역을 들여다보는 미국 쪽에서 이런 분석들이 나온다. 여기에 인도의 존재를 가세시켜 더 복잡한 그림을 그려내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말하는 동북아 균형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의 문제가 이런 정세를 떠나 가능하지 않다. 얼마 전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이 논란에 대한 해설자료를 따로 내면서 균형자를 중국과 일본 사이의 역할로 설명했었다. 이리 저리 말을 붙이면서 되레 옹색해져 가는 균형자론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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