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처럼 단호한 생명이 있을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관만 내놓고 온 몸을 두터운 벽 속에 유폐한, 그러면서 여린 마파람에도 눈알을 감춰버림으로써 세상과의 대면을 잽싸게, 단호하게 거부해버리는 절대 고독의 정신. 그 놈들은 교미색으로 암컷을 유혹하는 격정의 생식활동에서조차 절정의 순간을 넘자마자 게 구멍으로 돌아가 개흙으로 대문을 닫아건다고 한다.
권지예(사진)씨의 단편 ‘꽃게무덤’에는 그 꽃게의 살에 집착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사연을 알 수는 없으나, 연인을 바다에 묻고 그를 못 잊어 하는 듯한 여자는 게만 보면 환장을 한다. 그에게 게는 죽은 영혼과 소통하는 통로인 듯하다. "죽은 사람의 살을 뜯어먹은 게나 물고기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 또 그걸 먹는 사람의 영혼은요?"(31쪽) 그 허망한 소통의 몸부림은, 해갈되지 않는 그리움이거나 아쉬움이거나 죄책감의 마임이다. 한 밤중, 동거하는 남자와 함께 했던 잠자리 머리맡에 혼자 앉아 간장에 담근 게의 다리를 정교하게 파먹기도 한다. "섹스로도 채울 수 없는 그녀의 허전함"은 아득하다. "갑각류의 껍질처럼, 속이 빈 대나무의 외피처럼 단단한 껍질로 싸여 그가 닿지 못하는 그녀의 내부엔 무엇이 있는 걸까."(19쪽) 동거남과 다툰 끝에 여자는 집을 나가고, 옷장 속의 옷들만 "몸에 대한 기억을 고집스레, 어쩌면 영원히 간직할 것 같은 썩지 않는 게의 딱딱한 껍질처럼" 걸려있다. 남자는 그 빈 옷에서 "음험한 간장 냄새를 맡는다."
간장게장을 담글 때는 달인 장맛이 게 살에 잘 배게 하려고 게의 다리 끝을 조금씩 자른다고 한다. 죽음의 순간에야 몸을 여는 그 완강한 영매(靈媒)를 지독스레 발라먹는 여자의 행위는 가망 없는 소통의 몸부림, 혹은 대답 없는 절대자를 향한 제의(祭儀)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속을 파 먹힌 게 껍질 무더기(꽃게 무덤)의 공허함은, 각(殼)을 두른 목숨 있는 것들의 소통, 혹은 ‘관계’라는 것이 대체로 그러하다는 암시였을까. 그 각의 근원적 한계 앞에 딱딱함(甲)과 부드러움(軟)의 차이는 사소한 것일지 모른다.
작가는 새로 낸 소설집 ‘꽃게 무덤’(문학동네 발행)에 표제작을 포함, 9편의 각기 다른 질감의 단편을 실었다. 매끈한 문체며 감각적인 묘사는 여전하고, 입맛 없는 계절의 간장게장처럼 감칠맛 나게 읽힌다. 노(老)화가 피카소가 마지막 여자의 요리를 소재로 그렸다는 ‘뱀장어 스튜’를 모티프로, "펄떡이는 것들을 모두 스튜 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내는" "은근하고 고요한 화력"같은 삶을 그린 ‘뱀장어 스튜’(2002 이상문학상 수상작), 사십 여년을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함께하지 못한 사랑이 긴 세월 ‘깊어가는 강물’처럼 흘러 서로에게 스미는 최근작 ‘물의 연인’ 등이 특히 그렇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이전 소설들이 지녔던 방장(方壯)한 혈기가 숙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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