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하라는 전보 받았습니다. 무슨 용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지금 특파원부터 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500명의 한국인이 남아 있고 대사관도 있습니다."(1975년 4월 18일)
"만약 불행히도 사이공이 함락 직전에 놓이면 사이공의 최후 표정을 컬러로 찍고 돌아오라. 현지 사이공의 표정과 사이공 군대의 분투하는 사항도 찍어 달라. 베트콩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으나 그런 위험한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4월 23일) "오늘쯤 대사관은 철수할 것 같습니다. 대사관 무선통신도 오늘 아침에 끊었습니다."(4월 28일)
30년 전 사이공이 베트콩에 함락되고 베트남전이 남 베트남과 미국의 패배로 끝나는 순간까지 현장을 지켰던 유일한 한국 기자 안병찬(68) 전 경원대 교수의 전쟁 르포르타주 ‘사이공 최후의 표정 컬러로 찍어라’가 30년 만에 새로 나왔다. 한국일보 외신부 기자로 베트남전 취재 ‘명령’을 받고 떠나 베트남 상공에 진입한 날이 1975년 3월 23일. 이 책은 사이공 탄손누트 공항에서 캐세이퍼시픽항공 601기를 내린 뒤 한 달 여만인 4월 30일 새벽 미국 대사관 옥상에서 치누크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하기까지의 생생한 취재기록이자, 월남 전선 보고이다.
책에서 우선 인상적인 것은 시시각각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면서 끝까지 전쟁 현장의 분위기와 동포, 대사관 직원을 취재하는 모습, 가슴 졸이면서 절대 무리하지 말라는 전문을 보내는 회사와 긴박하게 연락하는 장면 등 전쟁 현장의 생생한 풍경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자신의 체험에 외국 기자와 평론가들의 베트남전 평가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이 ‘더러운 전쟁’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재판까지 찍고 출간된 그 해 바로 절판되다시피한 예전의 ‘사이공 최후의 새벽’을 손질하고, 종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최근에는 거의 1년에 한 번씩 찾아가서 본 베트남의 전쟁 이후 모습을 보충했다.
그는 패전한 미국이 쫓겨가면서 어떻게 동맹(同盟)의 신의까지 내팽개쳤는가를 미국의 비상철수작전 진행 상황을 담은 ‘매디슨 보고서’를 통해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베트남 문제 협의를 위해 미국과 남·북 베트남 대표 등으로 구성된 4자합동군사위원회의 미국측 수석대표 존 에이치 매디슨 대령이 작성한 것으로 다급한 순간이 오자 미국이 혈맹이라던 한국의 대사관원 및 교민과 제3국인을 어떻게 방기했는가 하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당시 한국대사관 무관보좌관 이달화 소령(공군 준장 예편)은 5월1일 4자합동군사위 미국 대표단 차석 해리 지 서머스 주니어 중령과 마주쳤다고 한다. 서머스는 그 자리에서 이 소령을 붙들고 "선 오브 비치"라고 욕을 해대며 "그레이엄 마틴 미국 대사가 지휘한 긴급 구조작전이 중단되어 빚어진 더러운 결과를 외신기자에게 폭로하겠다"고 벼르더라는 것이다.
그는 이 보고서가 ‘초강대국인 미국의 이기심과 약속 위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베트남 전쟁은 강대국의 이익만을 추구한 침략 전쟁이었고 베트남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전쟁이었기 때문에 패권적이고 부도덕하고 더러웠다’고 비판했다. 30년 세월이 지났지만 이만한 한국 기자의 전쟁 르포르타주를 찾기가 아직 힘들다. 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 이른바 ‘배속된(embedded)’ 신분으로 미군을 따라다니며 써보낸 종군 기자들의 기사는 애초에 이 ‘전선(戰線) 기자’의 글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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