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수(春瘦)/ 정끝별
마음에 종일 공테이프 돌아가는 소리
질끈 감은 두 눈썹에 남은
봄이 마른다
허리띠가 남아돈다
몸이 마르는 슬픔이다
사랑이다
길이 더 멀리 보인다
시인의 봄은 "몸이 마르는 슬픔"의 계절이다. 마음조차 텅 비어, 들리느니 "종일 공테이프 돌아가는 소리" 뿐이라고 한다. 그게 사랑 탓인가 보다. 멀지 않은 과거완료형의 사랑.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형이냐 과거형이냐 하는 시제가 아니라, 내용으로서의 슬픔이다. 결핍한 사랑의 슬픔은 대개가 운명적인, 존재론적인 슬픔이기 쉽다. 그 슬픔은 늘 고통스럽고 지긋지긋하지만, 우리는 사후적으로 깨닫는다. 그 슬픔으로 하여 마음의 눈이 조금씩 깊어지고 "길이 더 멀리 보인다"는 것을. 시인은 ‘공전’이라는 시에서, 그 결핍으로서의 사랑의 힘을, 지구 중력 궤도를 도는 달의 공전의 힘에 비유하고 있다. "팔다리를 몸에 묶어놓고/ 몸을 마음에 묶어놓고/ 나로 하여금 당신 곁을 돌게 하는/ 끌어당기고/ 부풀리고/ 무거워져/ 기어코 나를 밀어내는/ 저 사랑의 포만// 허기가 궤도를 돌게 한다" 역시 중요한 것은, 허기의 힘이다. 고프다. 살아야겠다.
시인이, 5년 만에 세 번째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민음사)을 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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