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는 작은 섬이라서 도망칠 곳이 없기 때문에 관광지로는 드물게 소매치기가 없다는 정보를 여행안내서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베니스를 무대로 소매치기 아이들과 도둑이 벌이는 모험에 미스터리와 팬터지가 어우러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다.
엄마가 죽고 프로스퍼와 보 형제가 고아가 되자 냉정한 에스터 이모는 동생만 입양하고 형은 기숙학교에 보내려 한다. 절대로 동생과 헤어질 수 없는 프로스퍼는 이모를 피해 독일에서부터 멀리 베니스로 도망친다. 베니스는 엄마가 어릴 때부터 들려준 이야기에 항상 등장한 환상의 도시다. 그러나 동전 한 푼 없는 형제를 맞아준 것은 뼈 속까지 파고드는 차디찬 겨울의 바닷바람뿐이다. 그때 베스페라는 소녀가 비밀 아지트로 그들을 데려간다. 그곳에는 갖가지 사연으로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가끔씩 들러 훔친 물건을 주는 후원자가 있는데 스스로 ‘도둑의 왕’이라고 부르는 스키피오다.
소소한 도둑질로 일상을 이어가던 아이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 들어온다. 한 백작이 도둑의 왕에게 사진작가 이다 스파벤토 집에 있는 회전목마의 날개를 훔쳐 주면 거액을 주겠다고 한다. 보다 안정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모험심에 들뜬 아이들과 영웅심에 사로잡힌 스키피오는 그 일에 몸을 던지기로 한다.
한편, 에스터 이모가 프로스퍼와 보를 찾아 베니스로 와 사설탐정 빅터를 고용한다. 다양한 변장술을 구사하며 형제를 뒤쫓던 빅터는 아이들을 인형처럼 생각하고 사랑이라고는 없는 에스터와 형제의 우애 사이에서 갈등한다.
도대체 낡아빠진 나무 회전목마 날개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길래 백작은 그렇게 큰 돈을 주겠다는 걸까. 아이들은 어떻게 그것을 훔쳐낼까. 아이들 앞에서 그토록 당당하고 잘난 체하는 스키피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왜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도둑 행세를 하며 거리의 부랑아들에게 집안의 물건을 빼내 도와주는 걸까. 베스페는 왜 집에서 도망나와 자기의 이름마저도 숨기고 사는 걸까.
짜임새 있는 사건 진행으로 한 숨에 다 읽게 되는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캐릭터다. 빨리 성장하여 독립하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십대 청소년들의 마음, 다섯 살 배기 보의 답답할 정도의 천진난만함, 기성 질서에 함몰된 어른과 소년기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 등. 그래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이 읽어도 재미를 느끼기에 손색이 없다.
단, 작가의 고향 독일뿐만 아니라 전 유럽, 북미 지역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는 표지나 활자크기 등 외형적인 면 때문에 독자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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