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권의 적정 행사와 피고인의 인권 보호는 언뜻 모순돼 보인다. 그러나 현대의 형벌체계는 두 가치를 모두 추구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결실로 만들어졌다. 형벌권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존립수단으로 작용하며, 피고인의 인권 보호는 형벌의 잔혹한 역사에 비추어 국민주권의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가 개인에 대하여 인신 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합목적적이고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며 적정하게 행사하여야 한다. 이는 국가 형벌권의 남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한나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여성들의 치안범죄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연설을 하고 나서 그 수단으로 상습 성폭력 범죄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워서 행동을 감시하는 강력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였다. 적어도 ‘강력한 제도’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징역 대신 전자팔찌를 채운 채 사회에 내보내 갱생을 돕는 서구의 제도와는 사뭇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폭력범에 대하여만 형과 별도로 형벌의 내용과 다르지 않는 감시제도를 도입하려면 신중히 검토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는 형법보다 특별법에 의해 처벌하는 강력범죄가 많다. 특히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의하면 특수강도강간등의 죄를 범하면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다. 이는 인간의 생명을 영구히 빼앗는 살인의 경우보다 중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국가적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개인적 범죄의 경우 가장 강력한 처벌규정 중의 하나이다. 물론 혼자서 주간에 위험한 물건이 없이 재산탈취도 하지 않고 부녀자를 강간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강도가 강간을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의 규정이 있었는데도 제정된 것이다. 더하여 존폐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보호법상의 보호감호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형사법에 규정되어 있는 이러한 무시무시한 처벌 규정들은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강화되어 왔고, 이러한 처벌 규정들의 적절한 운용만으로도 교화 기간의 사회격리는 현재로서도 충분하다고 본다.
부녀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그 의사에 반하여 폭력적으로 빼앗는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적 개입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법의 이름으로 국민이 수형 대상이 되는 형벌권을 제정하거나 행사할 때 반드시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이 형벌의 적정성이다. 다른 형벌과의 균형성도 문제가 되며 국가가 특정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떠한 교도 과정과 재사회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2002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검거된 전체 피의자의 64.3%가 재범자였으며, 강도·절도 등의 경우는 성폭력범보다도 더 높은 재범률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소위 감시가 곤란하여 국민들에게 심한 박탈감을 주는 선거범죄나 뇌물범죄, 피해대상과 피해지역이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에 이르는 소위 환경범죄 등의 경우에는 오히려 감시제도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시대에서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비록 범죄자에 대한 감시제도라고는 하나 범죄행위와 무관한 행위까지도 간섭과 통제를 당할 가능성이 높은 ‘전자팔찌’의 도입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이 범죄에 노출되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판단되면 강력한 제재 수단을 생각하기보다, 그 원인과 좀더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연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한다. 형벌권의 행사는 처벌이나 보복보다는 교화에 더 목적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조성오 환경운동연합 법률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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