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날씨와 강풍의 영향으로 28일 강원 양양과 충북 영동 등 전국 20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은 수그러들지 않고 밤에도 강한 바람을 타고 계속 번지고 있다.
이날 오후 3시40분께 강원 양양군 현남면 입암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로 12개 마을 주민 3,000여 명에 긴급 대피령이 내려지고, 민가 등 13채의 건물과 산림 100여ha가 불탔다. 한국전력은 강풍에 쓰러진 나무가 전선에 걸쳐져 바람에 마찰되면서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영동지역에 이날 새벽부터 건조경보와 강풍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산불은 진화헬기가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의 순간최대풍속 27.3c의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불이 임호정, 포매, 원포, 지경, 견불, 상월천, 하월천, 남애1·2·3리 등으로 확산되자 오후4시14분께 주민들에게 긴급대피령이 내려졌다. 남애리 바닷가 군 해안초소 4개소 근무병력도 긴급 대피했으며 옛 입암리 보건소가 소실됐다.
진화헬기 4대, 주민 공무원 군인 등 3,800여명이 진화에 나섰으나 강풍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오후 늦게 바람이 다소 약해지면서 큰 불은 잡혔으나 바다 쪽으로 밤새 조금씩 번져나갔다. 당국은 오후 7시 헬기를 철수시키고 민가 주변 등지에 방화선을 구축, 진화인력을 배치하고 야간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양양군 현남면 원포리 주민 김영남(68)씨는 "태풍 루사 때 집을 잃고 2,000만원을 융자받아 신축했는데 이번 불에 또 타버렸다"며 "아직 1,500만원의 빚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살란 말이냐. 차라리 불에 타 죽는 것이 속 편했을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엄기상(74)씨는 "쌀 두 말만 챙겨 빠져나왔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원포리 주민 김옥화(52·여)씨는 "1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고3 수험생 딸과 고 1 딸을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애들이 앞으로 어디서 공부를 해야 할 지 막막하다"며 눈가를 훔쳤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5일 발생한 산불피해의 복구와 이재민 구호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시 산불이 발생하자 허탈해 하고 있다. 강원도는 이날 오전 각 시·군에 ‘건조·강풍경보 발령에 따른 산불예방 특별 강화 지시’를 내리고 전 행정력을 산불예방 활동에 집중했다.
또 27일 오전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이날 오후 강풍으로 되살아나면서 천태산으로 옮겨붙어 신라시대 고찰인 영국사 쪽으로 번져 제2의 낙산사 사태가 우려됐다. 양산면 누교리 등 인근 3개 마을 90여명의 주민들은 긴급대피했다. 28일 오후 11시20분께 전북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 덕유산 줄기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불이 나자 관계 공무원과 주민 등 500여명이 현장에 긴급 투입,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바람이 거세고 산세가 험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이날 밤 전국 20곳 중 11곳의 불길은 잡혔으며 나머지 9곳 중 경북 상주시 공성면 연호리 등 일부 지역의 산불은 계속 확산됐다. 전북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 야산에서 발생한 불은 20여시간 동안 인근 보절면까지 강한 바람을 타고 다시 번졌으며, 현장에서 진화작업하던 육군 35사단 소속 최모(28) 대위가 부상했다. 소방방재청은 이날 산불이 목동리 임야 150㏊를 포함해 전국 300여ha의 산림을 태운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양양=곽영승기자 yskwak@hk.co.kr
영동=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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