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사각봉투가 없다. 어디에 그런 등기 우편물 하나를 보내려면 온 책장을 다 뒤져야 한다. 결국엔 봉투를 찾지 못하고 먼저 받은 우편물 봉투에 다시 넣어 보낸다. 한번 쓴 봉투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자리에 흰 종이를 붙이고 다시 주소를 바꾸어 적어 보낸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봉투 좀 사다 놓아야지’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다 또 얼마큼 시간이 지나 봉투가 필요하면 또 온 책장을 뒤지는 식이다.
어제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 봉투 때문에 전화를 받았다. 아니, 봉투 때문에 온 전화가 아니라 보내준 우편물을 잘 받았다는 말과 함께 봉투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처음으로 그렇게 다시 사용한 봉투를 받아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글엔가 내가 쓴 종이 아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평소 종이에 대해(결국은 나무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봉투는 정말 그래서 다시 사용하는 게 아닌데 그랬다. 상대방이 너무도 진지하게 말해,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말도 못하고 전화기를 든 채 얼굴만 빨개지고 말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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