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는 이색적인 이벤트가 펼쳐진다. 소위 계급장을 막 단 졸업생들이 교정의 강재구 소령 동상을 향해 일제히 달려가 꽃다발을 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먼저 꽃다발을 걸면 별도 미리 단다는 속설 때문이다. 1965년 10월 4일 월남 파병을 앞두고 교육훈련을 하던 중 병사가 실수로 수류탄을 떨어뜨리자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려 산화한 강 소령의 영웅담이 신화처럼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전 전쟁영웅으로 해병대에는 이인호 소령이 있다. 1966년 8월 11일 투이호아 일대에서 동굴에 숨은 베트콩 수색작전을 벌이던 이 소령은 컴컴한 굴 속에서 날아온 수류탄 하나를 재빨리 굴 속으로 던져넣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두번째 날아온 수류탄은 미처 피할 겨를이 없어 몸으로 덮치고 부하들을 살려냈다. 이 소령과 강 소령은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도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기록돼 있다. 전 전 대통령은 1970년 백마부대의 29연대장으로 파병돼 1년 가량 임무를 수행했으며, 노 전 대통령은 1968년 맹호부대 대대장으로 참전했다.
전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1966년 맹호부대의 중대장으로 참전했으며 이후 두 차례나 더 월남에 파병된 기록을 갖고 있다. 초대 주월한국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80) 장군은 지금도 파병전우회를 이끌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베트남전에는 기업가도 동참했다. 한국전쟁 후 주한미군의 수송 용역에서 출발한 한진상사의 조중훈 회장이 베트남에서 미군 군수물자 수송을 따내 한진그룹의 기초를 닦았으며, 현대건설은 1966년 깜란항 미군기지 준설공사 등을 거치면서 이후 중동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주월 한국대사관의 마지막 외교관으로 남베트남 패망의 현장에 있었던 김영관(80) 전 대사와 이대용(81) 전 공사에게는 베트남전이 쓰라린 기억일 뿐이다. 김 전 대사는 미군의 철수작전이 완료되기 전날 헬기로 미 대사관을 빠져 나왔지만, 이 전 공사를 비롯한 교민 100여명이 탈출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뒤에 접하고 심한 자책감에 빠져야 했다. 이 전 공사는 통일베트남 당국에 억류돼 5년 가량 옥살이를 한 뒤 풀려나 귀국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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