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투자기법으로 천문학적 이익을 남긴 론스타와 칼라일에 대한 세무조사 사실이 전해졌을 때 국민들의 대체적 반응은 ‘잘 걸렸다’였다. ‘뉴브리지는 왜 놔두나’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론스타나 칼라일, 뉴브리지를 이토록 ‘미워하는’ 이유가 반드시 외국자본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 싶다. 한국씨티은행과 제일은행의 새 주인이 된 씨티나 스탠다드차타드 역시 해외자본이지만, 이들을 향한 배타감정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혐오의 핵심은 외국자본 자체가 아니라 단기성 펀드자본, 즉 국내 산업발전은 안중에 없고 짧게 투자해서 오로지 이익만 챙긴 채 떠나가는 행태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만큼 토종자본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당대의 국내 금융전문가들이 최근 탄생시킨 ‘보고펀드’가 특히 그렇다. ‘외국자본에 대항마가 되어줬으면…’ ‘우리은행만은 외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아줬으면…’하는 염원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보고펀드도, 혹은 다른 토종펀드도 결국은 사모펀드다. 국적은 다르지만, 칼라일 론스타와 기본 성격은 비슷하다.
물론 국부유출 우려는 없고, 투자행태는 외국펀드보다 덜 ‘얄미울’ 수 있다. 정부 정책에도 비교적 잘 순응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펀드에겐 ‘이익을 실현하면 새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 불변의 투자 룰이 있다. 보고펀드가 우리은행을 인수한다 해도 10년, 20년씩 장기 투자할 수는 없다. 한 곳에 그토록 오래 묶인다면 그것은 더 이상 펀드가 아니다.
토종자본에 대한 기대는 좋지만, 펀드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거나 요구해서는 안된다.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 역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펀드자본이라면 그 이상의 것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성철 경제과학부기자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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