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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청자와 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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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청자와 에세

입력
2005.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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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에 관한 찬사와 악담은 끝이 없다. 축복이면서 저주이고, 화려하면서 애처롭고, 절박하면서 여유롭고, 피를 끓게 하다가 돌연 체념에 빠지게 한다. "담배는 고통이며 희망이다. 고독이며 충만이고, 선이며 악이고, 혼란이고 사색이다. 담배에는 사랑과 혐오가, 존중과 멸시가,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위대한 사상가나 문호, 불세출의 영웅이나 지도자라면 대부분 이런 정도의 통찰력을 보여 줬다. 지적 유희나 성숙도를 즐기거나 과시하려는 사람에게 이처럼 부조리하고 모순된 담배의 정체와 존재는 늘 신비스럽고 유혹적이다.

■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애연(愛煙)과 혐연(嫌煙)은 극단적으로 적대적이다. 그 전쟁은 가격문제가 나오면 가장 치열해진다. 지난달 하순 보건복지부가 7월부터 담뱃값을 500원 추가 인상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이후 벌어진 일들을 보자. 복지부는 연초 담뱃값을 500원씩 올렸더니 3월까지 흡연율이 연말 57.8%에서 53.3%로 떨어졌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담배로 인한 질병에 쏟아붓는 연간 수십조원을 절약하면서 국민 건강증진 재원을 마련하는데 가격인상 만큼 즉효적 처방이 없다는 것이다.

■ 그러자 담배인삼공사의 후신인 KT&G는 정부가 연초면 나타나는 금연분위기 및 웰빙취향 확산을 가격효과로 왜곡한다면서 ‘담배도둑 극성’이라는 묘한 자료로 대응했다. 편의점 판매 1위 품목인 에세(2,500원) 한 보루면 쌀 한말을 살 수 있고 소형트럭 한대분인 5,000갑이면 쌀 80가마 이상과 바꿀 수 있는 ‘귀중품’이 됐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 최고급 담배였던 ‘청자(100원)’가 택시기본료(80원)보다 비쌀 때 기승을 부렸던 도둑 얘기도 곁들였다. 여기에 15만여 담배판매점포주 모임인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가 "담배점포를 강·절도의 온상으로 만드는 값 인상을 강행하면 문을 닫겠다"고 가세했다.

■ 하지만 대세는 인상쪽으로 굳어졌다. 그제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세계보건기구 주도의 ‘담배규제에 관한 기본협약(FCTC) 비준안’을 의결했다. ‘비준국은 담배제품에 대한 수요감소를 위해 가격 및 조세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등의 협약내용은 8월부터 발효된다. 담배연기에 인생을 실어 보내는 소외계층들은 이제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더러워 끊는다 ◆열받아 늘린다 ◆주변에서 얻어 핀다 ◆싼 담배로 바꾼다 ◆꽁초를 주워 핀다 ◆미리 사재기 한다 ◆필터까지 태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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