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 얽히거나 관련된 유명 인물들은 정치인부터 반전주의자에까지 다양하다.
1960년대 저항가요인 ‘We shall overcome’ ‘Blowing in the Wind’ 를 부르며 인권과 반전을 외쳤던 포크가수 조안 바에즈는 반전 메시지를 구슬픈 선율에 담아 한 시대를 풍미했다. 영화배우 제인 폰다는 1972년 북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대공포대에 걸터앉아 찍은 사진으로 참전 장병들의 공분을 샀다.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반전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1967년 맥나마라가 작성한 "미국은 베트남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내용의 비밀보고서는 1971년 뉴욕타임스에 단독 보도되면서 미국은 반전운동의 폭풍 속으로 빠져들었다. 국가안보에 관한 비밀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피소된 뉴욕타임스는 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소송 끝에 승리했다. 이는 언론자유를 보장한 기념비적 사건이다.
미국의 명분없는 전쟁을 시작한 대통령은 존. F. 케네디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미국을 수렁에 빠트린 대통령은 린든 존슨이었다. 그는 1964년 미군 구축함이 북베트남군에게 공격받은 ‘통킹만 사건’부터 전선을 확대했다. 패전 처리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맡겨졌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이 과정에서 미군의 철수를 중재해 막후에서 영향력을 과시했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찌민은 종전을 보지 못하고 1969년 사망했으나 전쟁 승리로 국부(國父)가 됐다. 당시 총사령관을 지냈던
보 응우옌 잡 (과거표기 ‘보 구엔 지압’) 장군은 세계 최강 미군을 물리쳐 베트남인의 자부심을 드높였다. 올해 94세인 그는 베트남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세계적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가장 나쁜 경우를 상정해 대비하는 현실주의자들이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의 ‘스톡데일 패러독스’ 이론으로 학계의 주목을 끌었는데, 그는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8년을 보낸 참전용사다. 종군 기자로 유명한 피터 아네트도 베트남전으로 196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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