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서양에서는 영(靈)을 불러내는 영매(靈媒·박수나 무당에 해당)의 강령회(降靈會)가 인기를 끌었다. 산업혁명과 물질적 과학의 성취 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영에 대한 갈구였을 것이다. 영매는 죽은 자의 영을 형상화해 보여주고 몸 안에서 영체(靈體)를 뿜어내기도 했다. 영매와 함께 탁자에 손을 얹고 둘러앉으면 ‘톡톡’ 소리가 들리고 탁자가 기울고 뒤집혔다. 영매는 그 소리로 영과 대화해 메시지를 전해 줬다. 힘을 가하지 않은 탁자가 움직이는 것은 분명 영의 조화로 보였다.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탁자 운동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실험을 했다. 그는 탁자 바닥에 사지(샌드페이퍼)를 붙이고 그 위에 점차 약간씩 큰 4~5장의 미끄러운 판지를 풀 알갱이로 붙여 쌓았다. 그리고 판지의 밑은 밀렸을 때 확인이 가능하도록 아래 판지와 중첩되는 가장자리를 연필로 표시하고 전체는 고무줄로 적절히 탁자에 고정했다.
그는 1853년 발표한 논문에서 영매가 영을 불러낸다고 할 때 사람의 손이 제일 위 판지를 밀고 순차적으로 아래 판지가 밀려 마침내 탁자가 밀친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결론을 지었다. 사람의 힘이 아니라 영이 탁자를 움직였다면 판지의 밀린 방향은 이와는 반대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강령회 장면을 직접 관찰했던 과학자 중에는 "실제 상황을 이 실험이 대신할 수는 없다"며 반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영국의 앨프레드 월리스는 다윈과 동시에 진화론을 발표한 과학자다. 그러나 그는 다윈과는 달리 인간의 높은 지성과 도덕성 등을 자연선택 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같은 견해는 사회평등 신념을 가진 그가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선택의 핵심원리와 화합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물질 외적인 영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가 영매를 통한 강령회의 온갖 초자연적 장면을 실제로 여긴 것이 대표적 증거이다. 그는 1866년 친구 및 그 가족과 함께 직접 탁자에 손을 얹고 앉았을 때의 체험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탁자의 움직임은 분명 사람의 몸에서 나온 미지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패러데이가 ‘탁자 기울기’는 사람이 머리의 생각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탁자를 밀친 결과임을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을 때, 영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카펜터는 최면 암시가 심어준 주관적 인상에 따른 운동에 ‘관념운동’이라는 용어를 붙였다. 그는 이 운동을 ‘숨을 쉬거나 놀랐을 때의 반응과는 다른, 머리의 관념에 의해 유발된 제3의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월리스는 1870년대에 "꿈꾸는 듯한 최면과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의 상태는 전혀 다르다"면서 카펜터 지지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20세기로 들어오며 영과의 대화는 ‘위저 판’ 같은 글자판으로도 가능해졌다. 위저 판 위에 짧은 바퀴와 포인터가 달린 심장모양의 작은 판(planchette·플랑셰트)을 놓고 여기에 조용히 손을 얹은 후 플랑셰트가 구르는 대로 포인터가 가리키는 것을 영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당시에는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오늘날의 이른바 ‘분신사바(혹은 분신사마·영을 불러온다는 주문의 일종)’가 진정 영을 불러온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분신사바는 마음 속의 ‘운동 관념’이 의식을 피해 운동으로 즉시 이어질 때 누가 이 행동을 수행했는지 헷갈리는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관념운동 작용은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널리 알렸듯이, 추운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는 것과 같은 인간의 일상 기능이다. 현재 관념운동 작용의 생물학적 기원 및 의식적·의지적 행동과의 차이는 인지과학의 주요한 연구 주제다.
과학평론가·전 숙명여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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