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분기 그만그만한 코미디나 스릴러물을 선보이며 한국에서 ‘콘스탄틴’만을 흥행 톱5 명단에 올리는 데 그쳤던 할리우드가 5월4일 개봉하는 대작 ‘킹덤 오브 헤븐’을 신호탄으로 박스오피스 점령을 위한 대반격에 나선다.
‘킹덤 오브 헤븐’은 2000년 ‘글래디에이터’로 서사 대작의 부활을 알린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해 여름 개봉, 전국에서 380만 명을 동원하며 외화 관객동원 1위에 올랐던 ‘트로이’의 계보를 잇고자 하는 작품이다. 1억 3,0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엄청난 물량에 감독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출연진도 화려함 그 자체다. ‘반지의 제왕’의 ‘꽃미남’ 궁사 올랜도 블룸이 주연을 맡았으며 리암 니슨, 에드워드 노튼, 제레미 아이언스 등 내로라 하는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들과 ‘몽상가’의 신예 에바 그린이 합류했다.
영화는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184년 프랑스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시작한다. 눈보라 속 음산한 까마귀 울음 소리와 차가운 금속성의 삽 소리가 버무려진 도입부는 영화가 장쾌한 화면에만 기댄 단순 블록버스터가 아님을 암시한다.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은 예루살렘의 영주인 아버지 고프리(리암 니슨)가 찾아오면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성지수호의 여정에 나선다. 새 영주가 되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발리안은 불온한 종교지도자들과 기사들의 음모에 맞서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와 이슬람 왕 살라딘이 이룩한 평화를 지키게 된다.
스코트 감독은 ‘당대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라는 오랜 평가에 걸맞게 발리안의 험난하고 의로운 모험을 뛰어난 영상미로 채색한다. 중세 메세나항의 아름다운 풍광과 세트로 재현한 예루살렘의 고색창연함, 철저한 고증에 입각한 의상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십자군과 이슬람군의 전투 장면이다. 중세의 첨단 무기들과 병사들의 처절한 몸짓이 어우러지며 일대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킹덤 오브 헤븐’은 단지 화려한 액션과 장대한 스펙터클 만으로 스크린을 채우지는 않는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 충돌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고 종교가 우리 삶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지 제법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안락한 삶으로부터 백성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종교의 헛된 광기를 꼬집으면서 종교는 우열을 가릴 수 없고, 진정한 신은 마음속에 있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그래서 감독은 여느 상업적 서사 영화와는 다르게 종교 때문에 ‘지상 연옥’에 떨어진 인간 군상의 아비규환에도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럼에도 영화의 무거운 주제의식은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들지 못한다. 한낱 대장장이가 하루아침에 뛰어난 지략과 무예를 지닌 지도자로 둔갑하는 것부터가 감동을 반감시킨다. "그냥 개종합시다. 나중에 회개하고"라는 한 사제의 말을 통해 지나치게 종교를 희화화하는 모습과 "이 독일 친구가 법을 좀 알지" 라는 시대배경과 맞지않는, 조금은 생뚱 맞은 장면이 ‘옥에 티’ 수준을 넘어선다.
매끈한 외모를 벗어 던지고 기사도 정신에 투철한 영주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 올랜도 블룸과 가면을 쓴 채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화면을 장악하는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는 이 영화가 남긴 알찬 수확물이다. 미국 5월6일 개봉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몰려오는 할리우드 대작 X파일
‘킹덤 오브 헤븐’의 뒤를 이어 올 여름까지 선보일 할리우드 대작들은 ‘스타워즈: 에피소드Ⅲ 시스의 복수’ ‘우주전쟁’ ‘배트맨 비긴스’ ‘로봇’ ‘마다가스카’ 등 줄잡아 5편. 이들 블록버스터의 제작 과정이 담긴 X파일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 ‘스타워즈: 에피소드Ⅲ 시스의 복수’
5월26일 개봉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Ⅲ 시스의 복수’는 1977년 시작된 6편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는 작품.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제다이 영웅에서 다스베이더로 변신하는 아나킨 스카이워커 역을 누가 맡느냐 였다. 맷 데이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스타들의 틈바구니에서 역할을 따낸 것은 헤이든 크리스텐슨이라는 무명배우. 그는 기념품이나 받을 생각으로 오디션에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배트맨 비긴스’
6월 국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인 ‘배트맨 비긴스'는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을 시작으로 97년 ‘배트맨 앤 로빈'까지 4편을 선보였는데 ‘비긴스'라는 제목을 사용한데는 시리즈가 회를 거듭할수록 관객들의 발길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제작사 워너브러더스는 시장에서 생명을 다한 배트맨을 슈퍼맨과 대결 시켜 용도폐기할 작정이었으나 ‘신장개업'으로 마음을 돌렸다.
◆ 우주전쟁
H.G.웰즈 원작을 영화화한 ‘우주전쟁'은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작품. 스필버그는 1930년대 일대 파란을 일으킨 오손 웰즈의 ‘우주전쟁' 라디오 방송 원고를 경매장에서 구입해 90년대 중반부터 영화화를 꿈꾸었다. 7월8일 국내 개봉.
◆ ‘로봇’ ‘마다가스카’
올해에도 어김없이 대작 애니메이션 2편이 여름 방학 대전을 벌인다. 7월15일과 29일 각각 개봉 예정인 ‘마다가스카’와 ‘로봇’이 그 주인공. 목소리 연기가 흥행성적을 좌우하는 현실을 감안해 두 작품에도 스타 배우들이 동원되었다. 뉴욕 토박이 동물들의 아프리카 야생 체험을 담은 ‘마다가스카’는 벤 스틸러와 크리스 록의 목소리가 등장하며 로봇 로드니의 좌충우돌 모험을 다룬 ‘로봇’에는 이완 맥그리거와 할리 베리가 참여했다.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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