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안 팔면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니 너도나도 다 좋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식을 팔고, 떨어진 주가 때문에 다같이 피해를 본다. 왜 이처럼 바보 같은 일이 벌어질까.
칠흑 같은 밤, K와 L이 전봇대 밑에서 마주쳤다. 쓰레기를 몰래 버리다 들킨 것이다. 피차 말이 필요 없는 장면, 씽긋 멋쩍은 미소와 함께 둘은 황급히 흩어졌다. 물론 각기 임무를 완수하고서 말이다.
이튿날 이들은 관청에서 다시 마주쳤고, 서로 딴 방에서 심문을 받았다. "당신들 괘씸한 소행에 심증은 가나 CC TV 화면이 흐려 판별이 어렵다. 따라서 자백이 필요한데 둘 다 자백하면 각각 100만원의 벌금에 처하겠다. 만일 저 쪽이 버티고 당신만 자백하면 저 쪽은 벌금 200만원, 당신은 포상금 100만원이다. 당신이 버티고 저 사람만 자백하면 당연히 상벌은 반대다. 만일 둘 다 버틴다면 별 수 없이 무죄 방면이다."두 사람은 소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빠졌다.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때 단 10초라도 대면만 시켜 주면 강력하게 오리발 내밀자고 눈짓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안 되니 최대한 머리를 써야 한다. 둘의 입장이 똑같으니 가령 K의 생각을 엿보자.
"L이 만약 버틴다면 나는 자백하는 게 더 낫겠지. 왜냐하면 같이 버틸 경우 그냥 풀려나고 말지만, 자백하면 100만원 포상금을 받으니까. 그런데 L이 자백할 경우에도 역시 나는 버티기보다 자백이 낫겠군. 자백하면 100만원 벌금이지만, 버텼다간 200만원 벌금이니까. 따라서 L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관계 없이 나는 무조건 자백하는 편이 이익이군."이제 L은 어떨까. 바보 아닌 이상 L도 합리적, 경제적 사고 끝에 K와 같은 선택을 한다. 따라서 결국 두 사람 모두 자백하고, 벌금을 100만원씩 내고 끝이 난다.
그런데 뭔가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 않은가. 둘 다 버텼으면 한 푼도 안 냈을 것이다. 설령 한 쪽이 버티고 다른 쪽이 불었더라도 벌금 200만원, 상금 100만원, 이래서 도합 100만원만 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선 고스란히 200만원을 다 뺏긴 것 아닌가.
그렇다. 소위 최선의 개인적 선택들이 최악의 집단적 결과를 빚은 것이다. 주식도 원리가 똑같다. 주식을 파는 행위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합리성’ 때문에 우리는 공생이 아닌 공멸에 이른다. 생각할수록 참 아이러니컬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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