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기업체 관계자가 학교를 찾았어요. 다른 학생들을 따라 취업 설명을 들으러 가는데 한 담당자가 ‘여자는 뽑지 않으니 올 필요 없다’고 하는 거에요. 어찌나 서러운지 펑펑 울었습니다. 불과 15년 전의 일이에요."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얼마 전까지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과학계에서 여성으로 살아 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원 승격 심사에서는 무려 네 명의 여성 과학자가 동시 승진했다.
책임연구원 자리에 오른 생화학물질연구센터 배애임(42) 박사와 선임연구원으로 승격한 남길수(42·생화학물질연구센터) 박현미(37·특성분석센터) 노은주(36·의약화학연구센터) 박사가 주인공이다. 젊은 시절을 회상하던 배 박사는 "당시와 달리 요즘 여학생들은 자기 주장도 강하고 당당해 보여 좋다"고 말했다.
책임 및 선임연구원 승격을 위한 심사는 매년 한 차례 있으며, 평가기준 중 비중이 가장 큰 것은 연구보고서, 논문 게재 횟수, 특허, 상용화 등 연구 실적이다. 올해는 총 19명이 승격했고, 이 중 여성이 21%였다. KIST 전체로는 2002년 29명이던 여성 책임·선임연구원이 올해 4월 현재 43명으로 치솟았다.
약학을 전공한 노 박사는 "능력 있는 선배들이 여성 차별이 심한 과학계가 싫다며 한의사 변리사 등으로 직업을 바꾸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그러나 요즘은 여성과학자 육성계획 등으로 후배들을 위한 길이 훨씬 넓어졌다"고 강조했다. 몇 년 전까지 늘 현장에서 ‘홍일점’이었다는 남 박사는 ‘길수’라는 이름 때문에 남성으로 오해 받을 때가 많았다. "프로젝트 등을 위해 저를 뽑았다가 여성인 것을 보고 당황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요즘은 여성이 오히려 우대 받는 분위기지요. 그래서 이름 옆에 괄호를 달고 꼭 ‘여’라고 써둡니다."
박 박사는 그러나 "아직도 ‘과학자는 남성’이라는 편견이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요즘도 제가 전화를 받으면 ‘연구원 좀 바꿔달라’고 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 분들은 우리 센터가 100%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거에요." 이들은 과학자를 꿈꾸는 여성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희생한 만큼 후배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며 "겉의 화려함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진정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되, 어떤 일을 하더라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입을 모았다.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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