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녁 뒹굴거리면서 했던 놀이 하나. TV 보려고 SBS를 틀었더니 강호동이 뒤돌아선 여자 출연자에게 남자가 몇 명이나 서있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어, 저거 ‘천생연분’에서 본 것 같아. 희한하네. MBC로 돌렸더니 유재석 등이 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어, 저거 ‘유재석과 감개무량’에서 본 것 같아. 희한하네. 결국 TV 보다가 졸지에 SBS ‘웃찾사’의 한 코너인 ‘희한하네’ 놀이를 하게 됐다는 얘기다.
하긴, 희한한 게 그뿐이랴. 타 방송사 프로그램을 ‘크로스오버’하며 재탕하는 건 그냥 유행이 또 돌아왔다 치자. 하지만 방송사 전체가 똑같은 컨셉트의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건 정말 희한하다. MC들이 각자의 미션을 해결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MBC의 ‘토요일’과 ‘!느낌표’,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거의 모든 코너에서 공익성이나 정보성을 강조, 마치 ‘!느낌표’의 확장판 같다. 반면 SBS는 주말 내내 강호동이 연예인들을 커플로 맺어주지 못해 안달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KBS는? ‘즐거운 일요일 해피선데이’의 ‘찰나 스포츠’는 스포츠를 핑계로 남녀 출연자를 모아 춤부터 추게 하고, ‘도전! 빙고왕’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를 뒤늦게 가져온 것 같다.
개편 때마다 비슷비슷한 코너를 내세우며 대대적 개편이라고 광고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오락 프로그램은 컨셉트만이 아니라 MC까지 똑같다. 방송사를 바꿔 두 번 방영되는 동안 모두 실패한 ‘무모한 도전’의 진행을 여전히 유재석이 맡고, 퀴즈쇼 ‘전국이 들썩’은 김용만이 진행하고, 짝짓기는 강호동 전담이다. 방송사나 PD가 바보라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지는 않을 터. 그들은 시청률에 목 맬 뿐이다. 그래서 과거의 코너들을 이름만 바꿔 재탕하고, 경쟁사의 컨셉트도 가져오고, MC도 같은 사람을 쓴다.
문제는 MC나 코너의 유사성이 아니다. 핵심은 새로운 시도 없이 오직 시청률만 확보하겠다는 방송사의 안일함이다.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방송사가 개편 때마다 이런 식의 ‘버티기’를 하면 할수록, 시청자들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멀어진다.
한때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보았던 주말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들은 이제 드라마는 물론 스탠딩 개그 프로그램들보다 시청률이 떨어진다. 반면 요즘 MBC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모델로 삼고 있는 ‘!느낌표’나 SBS의 주말을 책임지는 짝짓기 프로그램은 처음 나왔을 때 파격적인 기획이 돋보이는 프로그램들이었다. 오락 프로그램에 관한 한, 방송사들은 ‘가끔’ 제대로 된 걸 내놓고, 대부분 ‘희한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때그때 달라요’가 유행어인 이 시대에, 왜 오락 프로그램은 ‘처음 사랑 끝까지’를 외치는 걸까. 정말 희한하네.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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