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지금 뭐 하는 거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층 로비. 연극 ‘아가멤논’을 보기 위해 토월극장에 입장하려던 관객들은 5층에서 들려오는 파수꾼의 외침을 들었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그리스 연출가 미하일 마르마리노스의 ‘아가멤논’은 처음부터 파격이었다. 그러나 그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관객들이 안내를 받은 곳은 객석이 아닌 무대.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의 개선파티가 열리는 곳이었다. 배우들은 와인 잔을 들고 가볍게 몸을 흔들었고 카산드라역을 맡은 배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물고기를 두 손에 든 채 조각상처럼 서있었다. 관객들이 처음 밟는 무대에 익숙해져 갈 무렵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새로운 무대가 솟구치면서 아가멤논이 마치 콘서트를 펼치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1명의 코러스가 여기저기서 대사를 던지며 무대를 가로지르는 30분 동안 관객들은 아르고스의 시민이 되는 생소한 경험을 나누었다.
공연의 마지막도 관객의 몫이었다. 좌석에서 일어난 관객들은 무대 뒷편으로 이동,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의 손에 죽은 아가멤논과 카산드라의 주검이 설치 미술 작품처럼 ‘전시’된 회전무대를 관람했다. 영웅의 살해를 둘러싼 코러스와 클리템네스트라의 격한 논쟁을 바라보며 관객들은 또 다시 공연에 참여했다.
마르마리노스는 아버지가 딸을 제물로 바치고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2500년 전 아이스킬로스의 그리스 비극이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2005년 서울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무대와 객석을 명확히 분리해온 관습을 버리고, 관객을 구경꾼이 아닌 당사자로 만든 것은 그런 의도의 산물이다. 코러스가 ‘목포의 눈물’ ‘돌고 돌고 돌고’ 등 우리의 대중가요와 민요 ‘뱃놀이’를 부르고 전통 춤사위에 전승(戰勝)의 기쁨을 담은 것도 그리스 비극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이물감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극을 지배하는 정적, 그리고 이를 깨뜨리는 코러스의 몸짓과 대사가 이루는 긴장감도 여느 무대와는 달랐다. 탁자 7개와 의자 13개로 이루어진 단출한 무대를 장식하는 코러스의 화음도 제법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가멤논’의 여러 실험적인 시도는 파격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스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의 교류,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 조화로운 완성품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서기 보다는 오히려 감정몰입을 방해하는 충돌에 그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월11일까지 (02)580-1300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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