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을 담임선생님이 구타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하자. 우연히 이를 알게 된 신문과 방송이 보도했고, 교사는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며 반장을 증인으로 내세워 반박했다. 하지만 하루 뒤 구타가 사실이었음이 밝혀졌다면, 언론은 이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더구나 해당 학교가 교사를 감싸기에만 급급하다면,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이 가만 있었을까? 과연 하루 정도 가십처럼 처리하다가 은근슬쩍 덮어버렸을까?
프로배구 LG화재의 신영철 감독이 소속 선수를 폭행한 사건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21일이다. 구타가 일반화된 것이 체육계의 현실이라는 이유로 감독의 폭행을 ‘정당화’하거나 최소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부터가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취재가 시작되자마자 감독이 고참선수들을 동원해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이다. 기자회견에 동원된 선수하나는 "요즘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데…"라며 구타 자체를 부인해주었고, 의기양양한 감독은 "때렸다면 내가 나쁜 놈… 결혼해 아이 있는 선수들을어떻게…"라며 손사래를 쳤다. 문제를 제기한 네티즌들에게 "대응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구타는 사실로 드러났고 감독이 선수들에게"구타는 없었다고 말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신 감독은 공개사과문을 발표했고, 구단은 3개월 감봉이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제재를 내렸다.
그리고 닷새가 지났다. 폭행과 은폐기도, 그리고 구단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네티즌들과 시민단체들의 문제 제기는 오늘까지도 계속되건만, 신문과 방송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LG화재의 다음 경기를 전망하면서 천연덕스럽게 "감독이 하기 나름"이라든지 "감독과 선수간의 관계가 완전히 복원되지는 않았지만…"이라며 사건의 종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똑같은 일이 학교에서 벌어졌어도 이렇게 쉽게 끝났을까?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을 구타하고, 또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어도 이틀 만에 뉴스가치가 사라졌을까? 한 스포츠 담당 기자는 언론이 무관심한 원인을 "프로배구이기 때문에"로 돌린다. 인기 있는 야구나 축구라면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졌을 테고, 자연히 언론도 계속 후속보도를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학교가 아니고 체육관이기 때문에, 그리고 야구장이 아니고 배구장이기 때문에 뉴스의 가치가 달라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고, 이를 입막음하려 했다는 사실은 스포츠 기사거리가 아니다. 폭력과 거짓에 관한 문제이다. 흥밋거리가 아니다. 사회문제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건은 방송사 스포츠뉴스와 신문 체육면을 통해 조그맣게 보도되었다. 박찬호가 승리했는데 인기도 없는 배구계의 감독 하나에 관한 기사가 중요할 리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 같은 문제를 파헤치고, 분석하고, 경고하지 않는 한 스포츠 저널리즘은 영원히 선정적 옐로 저널리즘과 동일시될 수밖에 없다. 선수 이름 잘못 쓰는 실수 정도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비전문가적 자세도 결국 스포츠부 기자는 전문 저널리스트가 아니라는 자조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가. 폭행 파문이 있은 직후, 팀 내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 LG구단측이 나서서 선수들 휴대폰까지 검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언론은 곧 선수들의 입을 통해 "휴대폰 압수 등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첫 번째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났는데, 두 번째 해명은 믿을 만 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별 취재거리도 안되는 것인가?
경제현상을 다루든 체육계를 다루든, 혹은 연예계를 다루든, 언론의 모습은 같아야 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전문가적 능력과 자세가 무엇보다도 앞서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스포츠 기사니까’, ‘사람들 관심이 적으니까’, 혹은 ‘잘 모르니까’라는 이유로 사람이 맞고 거짓말을 강요 당하는 일을 눈감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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