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북 영천시를 찾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결사적이었다. 오전 10시께 영천시 대창면 농협 앞 거리유세를 시작으로 무려 12곳을 돌아다니는 강행군을 했다. 자주색 바지 차림의 박 대표는 단단히 각오한 듯 했다.
봄볕 좋은 시골 마을에서 박 대표는 만나는 촌부마다 연신 손을 붙잡으며 "잘 부탁한다"를 연발했다. 신작로가 겨우 닿은 골짜기건, 흙바람 몰아치는 길에서건 사람 모인 곳이면 차를 세우고 "저의 얼굴을 봐서라도 한나라당 후보를 꼭 당선시켜 달라"고 했다. 점심을 이동 중에 김밥으로 해결하고 영천 곳곳을 훑은 유세는 시내 상가를 순방하는 일정을 끝으로 밤 10시가 돼서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대중적 인기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 대표였지만, 텃밭의 공기는 예사롭지 않았다. 박 대표가 유세하는 면전에서도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선거 때만 와가 표 달라 하노"라는 비아냥도 튀어나왔다.
아성인 TK의 영천이 무너진다는 것은 한나라당으로선 국회 의석 하나를 잃는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위기의 영천’은 한나라당에 2007년 대선의 ‘불길한’ 전조다. 박 대표를 필두로 한나라당 지도부들이 영천 재보선 지원에 결사적으로 나선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비단 영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듯했다. 인접한 청도군수 보궐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를 상대로 예상 밖의 고전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텃밭 부산도 마찬가지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열린우리당 후보와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예전 같으면 한나라당 간판만 걸어놓으면 선거운동도 필요 없던 지역이었건만, "이번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다"는 하소연이 쏟아져 나온다. 두 번의 대선 실패에 따른 영남 유권자들의 누적된 식상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여진다. 식상함은 한나라당의 견고했던 ‘영남 둑’에 천천히 구멍을 뚫어놓고 있다. 둑이 무너지듯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임시방편으로 구멍을 막아놓더라도 언제 다시 무너져 내릴 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 동안 도대체 뭘 했어"라는 영남 유권자들의 툭 던지는 한마디는 봄볕처럼 한나라당을 바짝 그을리고 있었다.
영천=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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