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숨겨놓은 딸’ 보도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랜만에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단순한 외도도 아니고 자신의 피붙이를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국가기관을 사생활 은폐에 이용했다는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인을 평가하는데 있어 한 인간으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와 정치인으로서의 평가를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 중 전자는 모르지만 후자에 있어서만은 개인적으로 김 전 대통령에게 오히려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이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사형제도로부터 초등학교 일기장 문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견해를 표명하는 등 낙후한 우리의 인권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이 이에 대해 인권위가 마당발처럼 사사건건 개입해 "너무 나간다"며 뭇매를 때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김 전 대통령이 다른 것은 몰라도 남북관계를 개선시킨 것과 인권위를 만든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권대통령과 노벨평화상이라는 명성과 달리 김대중 정부의 인권성적은 낙제점이었다. 그러나 최소한 인권위를 만들어 중장기적으로 인권을 신장시킬 수 있는 기반은 만들어준 것이다.
인권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인권위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따르는 것이다. 두번째는 차선적인 대응으로 인권위의 권고를 따르지는 않지만 인권위가 인권의 측면에서 권고를 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예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서는 것이다. 인권위에 대한 노무현정부의 그 동안의 태도는 두 번째에 해당된다. 현 정부는 국가교육정보시스템(NEIS), 이라크 파병, 집시법 개악 등 주요 정책에 있어서 인권위의 권고를 대부분 무시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 당시 인권위의 파병반대 성명에 대해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내용상 견해가 정부와 다르더라도 그런 행위 자체는 인권위의 고유업무에 속하는 것"으로 "인권위는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 것"이라며 인권위를 옹호했다. 반면에 한나라당의 입장은 세번째 입장에 가깝다. 한 예로, 그 당시 한 의원은 "존재가치가 없는 국가인권위는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문제는 최근 들어 노무현정부의 핵심 참모들이 공개적으로 인권위를 비판하며 세번째 입장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노 대통령의 입장이 변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입장은 여전한데 일부 참모들이 그러한 것이라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참모들에게 인권교육을 시켜야 한다.
사실 인권위가 비정규직 문제로부터 초등학교 일기장 문제에 이르기까지 마당발처럼 사사건건 개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자체가 그만큼 한국의 인권상황이 열악하다는 증거이다. 즉 인권위는 외부 진정사건만 조사할 수 있는바 그만큼 억울한 사람들이 관련기관에 호소를 하다가 아무 성과가 없자 마지막 수단으로 인권위에 찾아오는 것이다.
또 인권위의 활동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에서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지도층들의 인권의식이 얼마나 한심하며, 왜 인권위가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아직까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인권의 과잉이 아니라 인권의 결여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권상황이 빨리 개선되어 인권위가 할 일이 없어 파리나 날리고 있는 날, 그래서 국회가 인권위의 권력남용시비 대신 할 일도 없는 인권위를 비싼 예산을 쓰면서 무엇 때문에 두느냐고 비판하고 나설 날이 빨리 오기를 빌고 또 빌어 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