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고 죽는 것만큼 극적인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건 생자(生者)와 망자(亡者) 때문이라기보다는 주변을 지키는 남은 사람들의 모습이 평소와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일요일 새벽, 외할머니의 부고를 알리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울가망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찾았더니, 검은 상복의 어머니가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하셨다.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런 모습이셨다.
흐린 아침이 찾아왔다. 관 위로 흙이 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눈물이 흘렀다. 며칠을 의연하게 지내시던 어머니도 울음을 참지 못하셨다. 장녀로 보낸 60여 년의 시간이 어머니의 흐느끼는 어깨에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처음으로, 저 분이 내 어머니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이라는 생각이 가슴 한 구석을 긋고 지나갔다. 저 사람 역시 나처럼 자신을 낳아 준 부모에게 꽤 오랫동안 기댔을 터이고, 이제 그 분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길이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위로를 건넸다. 마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가장 솔직하고 편안한 어깨 두드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런 다양한 역할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내 주변의 친구가 누군가에게는 아들이나 딸이고, 또는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다. 내 형제가 누군가의 가장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연인일 수도 있다.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내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역할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황재헌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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