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자고 한다. 굶어보자고 한다. 몇 끼의 밥값으로도 할 일이 많으며, 한 끼씩 굶으면 사회가 살찐다고 한다. 기아체험을 하려고 외국으로 떠나는 연예인도 있다. 전직 장관도 떠난다. 동티모르로도 가고, 아제르바이잔, 몽골, 오클랜드로도 간다. 배고픔의 고생을 사서 한다.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4월22일은 지구의 날이지만, 지구에서는 사람이 사흘마다 14만 명이나 굶어죽는다고 한다.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에 해당하는 수치란다. 세계 인구의 6분의1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연명하며, 2015년까지 이런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국제연합은 호소한다.
실제로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은 배고픔의 고통을 체험하기 위해 굶어보자는 행사를 어떻게 볼까. 배부른 자들의 사치로만 보지는 않을까. 기아체험 행사를 빌미로 이득을 챙기고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건물을 짓는다는 소식에는 그저 민망할 뿐이다. 덜 먹어야 더 나눌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제로섬(zero sum)의 낡은 이념이다. 허기를 참으며 남기는 소극적 수법보다는 먹을 만큼 먹으면서 더 많이 생산하는 적극적 방법이라야 지속가능한 전략이 아니겠나.
아직도 맬서스의 망령에 사로잡혀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하기 때문에 기아와 빈곤이 지속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세계의 식량이 풍부해진 지 오래다. 누구나 하루 3,000 ㎉의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곡물을 생산한다. 모두가 먹고도 남을 양이다.
이를테면 남한에서도 쌀이 남아돌아서 휴경보조금을 주고 살 빼기가 유행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굶주리는 원인이 무엇일까. 6.25 전만 해도 남한보다 사정이 넉넉했던 북한이 아니던가. 북한 인구가 급증했기 때문인가. 누군가 그들을 착취했나. 선진국의 경제발전 대가로 그 곳의 생태계가 파괴됐나. 부자 나라들이 고통을 분담하지 않고 외면했나. 그도 아니면 북한 분배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인가.
세계를 둘러보면 알 수 있지만, 정치권력이 경제를 압도하는 사회는 가난하다. 통제사회일수록 생산성이 낮다. 통제와 간섭은 창의적 정신을 착취하기 때문에 부(富)를 창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진정 부족한 것은 사회 자유도인 것이다. 기아체험도 필요하겠지만 자유 창달 운동에 나설 때다.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 역시 선진국에 비해 2~3배의 격차가 여전한 원인도 근본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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