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 작가 이창래(40·사진)씨의 세번째 작품 ‘Aloft’가 ‘가족’(랜덤하우스 중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돼 내주 초 서점에 배포된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5년 당신이 놓쳤을 수도 있는 훌륭한 책 6권’ 가운데 하나로 꼽았던 그 소설이다.
데뷔작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95년)’과 두번째 작품 ‘제스처 라이프(Gesture Life)’로 ‘헤밍웨이재단/PEN 도서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미 주류문단과 언론의 극찬을 받은 이씨는 세살 때 이민 간 1.5세대 작가다.
전작들에서 미국사회 아웃사이더들의 정체성을 언어와 기억 등을 매개로 파헤친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는 국외자 의식을 넘어 인간 보편의 문제로 나아가고 있다. 소설은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나서 예순이 다 되도록 산 이탈리아계 토박이 미국인 ‘제리 베틀’을 화자로 내세워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가족이 어떻게 해체되고 있는지, 또 왜 완전히 해체될 수는 없는지" 말하고 있다.
화자는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한 뒤 경비행기로 비행하는 낙으로 산다. 적당히 소심하고 적당히 이기적인 그는 비행을 통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곳 하늘에서는 나머지 잡다한 것들… 나뒹구는 색 바랜 신문의 광고 전단도, 보도에 널브러진 채 죽어 악취를 풍기는 주머니쥐와 그것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노란 이빨을 드러내며 굳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것도 볼 수 없다."(1권 9쪽)
하지만 일상과의 거리 두기는 가족들이 잇단 난경(難境)을 겪게 되면서 실패한다. 임신한 딸은 림프절암에 걸리지만 태아의 건강과 불임 위험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고, 가업을 이은 아들의 사업도 신통치 않다. 거기에다 양로원에 있던 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는 우울증이 있던 한국계 아내가 사고인지 자살인지 모르게 익사한 데 대한 모종의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소설에는 "서로에 대한 의무에 태만하지는 않았지만 의무를 넘어서서 뭔가를 한 적도 없는"(15쪽) 아버지와의 관계, 늘 불편했던 자식 부부들과의 관계 등이 딸의 사망을 계기로 조금씩 해소돼가는 과정이 정치한 문체로 주조돼있다.
"예언자들이 우리가 세상 전체에 정의와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만큼 은총을 타고났다고 얘기"할 때의 그 "능력은 순수하게 잠재적인 것으로, 그저 순수한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드높은 가능성과 끔찍한 실재의 틈을 가장 자주 목격하고 견디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랑하거나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다."(2권 215쪽) 그 ‘틈’은 또 역자인 소설가 정영문씨의 말처럼, 가족 구성원들에 국한된 것만은 아닌, 이 사회 인간관계의 한계일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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