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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 자녀에게 책 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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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 자녀에게 책 권하기

입력
2005.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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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20년에서 30년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아이의 현재는 부모의 과거가 아니고 부모의 현재 또한 아이의 미래가 아니다. 그러나 부모는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리하여 방황하는 사춘기의 자녀에게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나 10대에,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몇 가지 일들 같은 책을 권한다. 그러나 권유에도 귀를 막는 애들은 어찌할 것인가.

열여섯 살 울리는 학교도 집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람에 누운 자기를 부드러운 휘파람으로 감싸주던 아빠는 이제 연극이나 문학 등 별 볼일 없는 곳에 재능을 쏟아 붓는 무능력자로, 맛있는 후식을 만들어주던 엄마는 한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악다구니만 퍼부으며 발버둥치는 여인으로, 학교는 어떻게 살 것이냐 보다는 사물을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을 양 떼 몰듯 다루는 곳으로 보인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울리는 지하철역으로 간다. 늘 ‘볼일이 있어’ ‘어떤 곳에’ 가기 위해서만 찾았던 지하철역, 그러나 그 날은 아무 할 일 없이 ‘바라만 보았고’ 그래서 불행한 사람, 이루지 못한 소망, 체념, 분주함과 같은 역의 남루한 풍경과 자신이 더 잘 보였다. 장님이 기타 반주에 맞춰 읊는 시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에 응대한 것도 그런 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님의 제안으로 울리는 하루에 두어 시간씩 장님에게 책을 읽어주게 되고, 그 책을 통해 문학과 인생의 의미와 삶의 방식을 터득해간다. 장님이 레퍼토리가 모두 떨어졌다며 작별을 고한 날,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울리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쁨을 만난다. 엄마를 발견했고 엄마를 통해 아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소포로 온 열쇠 세 개는 울리가 몰랐던 아빠만의 공간으로 안내하고 거기서 그는 지난 넉 달간의 특별한 경험이 아빠가 생애 단 한 번 연출, 주연하고 엄마, 친구 칼리, 문학 선생님이 조연한 사랑의 음모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독서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고 온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이 작품은 다양하게 읽힌다. 속도감 있는 재미있는 소설로, 책에 등장하는 스페인의 중세문학, 돈키호테, 그리스 신화, 셰익스피어, 보르헤스의 소설에서부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프랑스 만화까지 40편 이상 등장하는 책에 대한 안내서인가 하면 인생에 대한 경구가 도처에 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인간한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미해야 할 것이 더욱 많다’는 카뮈의 ‘페스트’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면 당신의 아이는 한 차례 허물을 벗은 것이 아닐까.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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