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적으로 술에 취해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강릉 여중생에게 관용을 바라는 네티즌 서명운동이 하루 만에 2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가정폭력에서 비롯된 비슷한 사건에 주변의 선처 호소가 뒤따르는 것은 흔하지만, 이번 사건을 유난히 안타깝게 여기는 사회의 시선이 그만큼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사건 자체 정황부터 동정할 여지가 많은 데다, 여중생이 평소 가족과 함께 겪은 고통과 고민을 적은 일기장이 유별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현상은 먼저 언론부터 자주 발생하는 비슷한 사건에 익숙해져 무심하게 대하지나 않는지 반성하게 한다. 언론이 소홀하게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근본을 조명하고 사회적 대책을 논하기보다는 주변의 동정과 선처 호소를 전하는 데 그친 것을 자괴하는 것이다. 이런 반성과 자책을 사회 전체가 나눌 때가 됐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잘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힘써야 할 과제는 사실 사법적 관용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다. 당장 딱한 처지에 동정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관용은 사법 당국이 법의 따뜻함을 살려 재량껏 베풀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사회는 이번 여중생 사건과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는 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말처럼 쉽진 않지만 그것이 올바른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안은 이미 많이 제시됐다. 문제는 강릉 여중생과 같이 극한적 상황에 처해 112 신고까지 해도 도움과 보호를 제때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뀐 뒤 아무리 관용을 베풀어도 존속살인에까지 이른 지극한 정신적 고통을 덜어 주진 못할 것이다. 정부와 사회가 조금이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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