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로이터 통신이 보낸 교황님 젊은 시절(요제프 라칭거) 흑백 사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1965년 9월 14일 찍으신 것으로 돼 있으니까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 신학부 교수 시절이지요. 날카로운 로만 칼라에 서른 여덟 젊은 미남자의 모습이 퍽이나 강렬했습니다. 섬세하고 온화하면서도 명민한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시더군요.
그 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 추기경 자문역으로 참가하고 계셨을 때이기도 하지요. 당시 주목받는 젊은 신학자가 또 한 사람 있었습니다. 교황 요한 23세가 공의회에 자문역으로 불러온 한스 큉(현 세계윤리재단 이사장) 튀빙겐대학 신학부 교수였지요.
잘 아시지요? 그 때 큉 교수가 교황님이 튀빙겐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2차 바티칸 공의회는 20세기 들어 가톨릭 교회에 닥쳐온 미증유의 도전들에 대한 양심적이고도 올바른 답변이었습니다. ‘회개와 쇄신’을 모토로 지리멸렬하고 구태의연한 가톨릭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면서 가톨릭이니 개신교니 러시아 정교니 하는 교파를 초월한 세계교회주의를 추구했지요.
그러나 현존하는 최고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큉 교수는 그로부터 14년 후 바티칸에 의해 신학 강의 자격을 박탈당합니다. 교황무오류설을 비판하는 등 로마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이 과정에서 교황님께서 상당한 역할을 하셨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그리고 나중에 바티칸 신앙교리성성 장관에 임명되신 후 중세의 유물인 금서목록을 다시 만드신 것도 기억하는 사람은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번에 교황 선출 회의 시작 직전에 올린 미사 때 "교회의 강령에 바탕을 둔 분명한 믿음을 갖는 것은 원리주의로 치부되는 반면 자신을 내던져 두고 ‘모든 가르침의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상대주의가 오늘날의 기준에서 수용되는 유일한 자세인 것 같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탱크 추기경’이니 ‘신의 충성스러운 개’니 하는 비아냥을 들으면서까지 ‘정통’ 교리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분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 큉 교수는 스위스 신문에 ‘추기경들께 보내는 공개서한’을 썼습니다. 제 식으로 요약하면 ‘라칭거 같은 사람 절대 뽑지 말라’는 얘기였습니다. "다음 교황은 교회를 권력의 중심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가톨릭 교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뿐인 진짜 교회라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교황은 교회연합(일치)운동의 수호자가 돼야 합니다."
저는 바오로 2세 서거 후 한국일보(4월 6일자 16면)에 ‘유럽 학계 교황 평가 격론’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여성 사제 서품 불허, 콘돔 등 일체의 인위적 피임 금지 등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소개하고 말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러한 진지한 비판들에 답하는 것은 다음 교황의 과제일 것이다."
이제 진짜로 교황님의 과제가 됐습니다. 일부 가톨릭 단체에서는 교황님의 선출을 "재난"이라고까지 비난했지요.
신자도 아닌 제가 이런저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가톨릭 교회가, 그리고 그 수장인 교황이 인류와 세상에 미치는 도덕적·종교적·정치적 영향력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교황님을 ‘아빠(Pope·Papa·Papas)’라고 부르더군요. 그런 애정과 존경을 내내 받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Deus beatus vos!(신의 가호를 빕니다!) kilee@hk.co.kr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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