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문익환의 시 ‘두 하늘 한 하늘’의 한 부분이다.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 조각들’은 어찌 시인의 시 한 구절뿐이겠는가. 동강난 이 땅, 한반도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졌고, 이 땅에 죄를 지은 우리들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져있지 않은가.
기자가 아는 어떤 이는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를 한반도의 허리라 부르지 않고 ‘가슴’이라 부른다. 찢어질 듯 아픈 가슴, 증오와 한이 서린 가슴, 뻥 뚫린 가슴, 화병(火病)든 가슴이라 부르는 그의 말에 동감한다.
◆ 대인지뢰 및 클러스터탄의 피해 = 1차 이라크전쟁 중 총 1,364명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라크군이 설치한 지뢰에 의하여 81명(6%), 미군이 사용한 DPICM(Dual Purpose Improved Conventional Munition·이중목적 개량 재래식탄)을 포함한 클러스터탄의 불발탄으로 80명(6%), 그리고 알 수 없는 불발탄으로 16명(1%)이 희생됐다. 상대방이 설치한 지뢰로 인한 사상자수가 자기편이 전장에 남겨 놓은 불발탄에 의한 사상자수와 같다. 2003년 3월부터 2005년 4월 9일까지 발생한 1만3,431명의 미군 사상자에 대한 조사보고서는 있지만 사상 유형별 원인은 아직 명시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는 전세계적으로 년간 2만6,000 여명이 살상되었고, 요즈음도 연간 1만여명이 지뢰에 의해 희생된다. 제1차 이라크 전쟁 이후 10년 동안 이라크와 쿠웨이트 민간인 1,600명 이상이 지뢰와 클러스터 불발탄으로 사망했다. 전쟁이 끝난 즉시 역사적으로 가장 광범위한 제거작업을 시행한 쿠웨이트에서 2002년에도 2,400개의 클러스터 자탄이 발견됐다. 미국 RAND 연구소의 보고서는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지뢰를 제거하려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450년 ~ 500년이 걸릴 것이라 예측했다.
◆ 미국의 지뢰 정책과 국제조약 = 2004년 2월 27일, 미국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시절 대통령 지시 48호(1996년 6월 26일) 및 64호(1998년 6월 23일)로 설정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새로운 지뢰 정책을 밝혔다.
앞으로 생산되는 모든 대인지뢰에 자폭 기능을 갖출 것, 대체무기의 개발을 계속할 것, 지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외원조를 대폭 증가시킬 것 등을 밝히면서 오타와조약에는 가입하지 않고 대인지뢰는 계속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을 받던 대인지뢰 문제를 자폭기능이라는 기술적 문제로 초점을 바꾸어 피해가려 한 것이다.
미국은 지뢰에 관한 한 늘 한국을 방패막이 예로 들면서 지뢰의 역할과 기능을 정당화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지뢰 정책에서도 한국은 늘 예외로 취급됐다. 세계 제일의 군사대국 미국이 겨우 대인지뢰에 의지하여야만 할 정도로 허약한가?
다른 면을 살펴보자. 미국 GAO(의회 회계감사원) 보고서는 10억개에 달하는 클러스터 자탄에 자폭기능을 부착하거나 개조하는 비용을 1994년을 기준으로 할 때 290억달러라고 밝혔다. 다른 보고서는 지뢰나 불발탄을 제거하는 비용과 클러스터 자탄에 자폭기능을 추가하는 비용이 거의 비슷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작전의 속도와 인권문제를 고려한다면 분명한 해답은 자탄을 개조하고 자폭기능을 추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왜 자탄을 교체하는 일에 주저하는가? 그 교체 비용이 모두 클러스터탄과 대인지뢰를 생산, 배치, 사용하는 나라의 부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쟁터에 남은 불발탄과 지뢰의 제거는 해당 국가의 책임이다. 미국은 제거비용의 일부를 생색내면서 지원하는 것으로 부담을 벗어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10년간 46개 나라에 8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하면서 세계 최대의 원조국가가 되었다.
오타와조약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하여 미국이나 한국은 할 말이 많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지 않고, 특히 러시아나 중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등 오타와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를 제시한다. 세계 제일의 군사대국 미국이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 지뢰와 클러스터탄의 대안 = 클러스터탄이나 대인·대전차지뢰가 아니면 적의 침공에 대비할 방법이 없는가? 진지하게 검토해 볼만한 대안이 있다. 독일 포병이 보유한 신형 감응신관식 지능탄(Sensor Fuzed munition. 보통 SFM으로 부른다)을 사용하면 불발 자탄이나 부수적 피해가 전혀 없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DPICM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독일 포병학교가 2004년 6월 발표한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탱크나 자주포대로 구성된 견고표적을 파괴하는 임무에 DPICM탄은 2만304발이 소요되고 감응신관식 지능탄은 144발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DPICM탄에서 발생할 최소 3만여개의 불발탄(우리나라의 국방규격에서 허용한 2.8%의 불량률을 적용할 때)이 원천적으로 제거됐다는 점이다. 군수지원과 전술기동의 유연성, 신속성이 확보되고 생존성이 증대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불발탄이나 부수적 피해의 발생이 없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대안 가치가 있다.
◆ WRSA와 클러스터탄 = 요즈음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WRSA(전쟁예비물자)에 대하여 살펴보자. 6·25 전쟁 당시 경험한 탄약보급의 어려움, 동아시아 지역 어딘가에 미국이 확보하기를 원했던 탄약저장 능력, 한반도의 긴장에 따른 한시적 특수 상황의 결과가 WRSA의 배경이다. 사실은 WRSA보다는 이미 작년 12월 말에 종료된 긴요소요 부족품 목록(緊要所要 不足品 目錄·CDRL)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제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재래식 탄약을 집중적으로 대량 발사하여 목표물을 초토화하는 전술 개념으로부터 우선순위에 따라 설정된 목표물을 정밀 타격하여 그 기능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전술과 교리가 바뀌고 있다. WRSA는 사실 이런 변화와는 부합되지 않는 탄약 운영이었다. 심지어 미군의 대표적 클러스터탄이면서 대화력전(對火力戰)의 핵심 전력인 다연장로켓마저도 WRSA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 관리되었다.
WRSA 탄약이 빠지기 때문에 전투 예비량을 실질적으로 충족하기 위한 조치가 곧 시행되어야 한다. 전체 WRSA 탄약의 3분의 1 정도는 제대로 성능을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미 두 나라의 탄약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정밀 조사하여 이 물량을 인수하는 것을 협의해 볼만하다. 현재처럼 사용 가능 여부를 미군측의 일방적인 판단에만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수하지 않는 탄약은 미국이 반출하든지, 적정한 가격으로 국내에서 비군사화할 수 있을 것이다.
탄약의 관리·유지·정비 및 비군사화(demil itarization)를 하는 부담까지 우리에게 지운 한미단일탄약보급체제(SALS-K. Single Amm unition Logistics System-Korea·1974년)는 이제 재조정되어야 한다. 이 기회에 클러스터탄과 지뢰 등, 비 인도적 탄약 및 무기체계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유지되어 온 탄약에 관한 한미협력의 틀을 상호 보완적인 방향으로 새로 짜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미국이 WRSA탄 비축 중단을 공개한 직후 미국으로부터 통합직격탄(JDAM·Joint Direct Attack Munition) 1,000발을 도입하여 대화력전에 투입하겠다는 우리군의 계획이 공개됐다. 우리는 미국이 군산복합체계(軍産複合體系)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 이제 JDAM을 사용할 수 있는 F-15K 전투기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논리가 나타날 시점이 됐다.
◆ 한반도의 가슴 = 비무장 지대는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곳곳에 지뢰를 품고 가로 누워 있다. 전쟁이 난다면 얼마나 많은 클러스터탄과 지뢰가 산과 들에 뿌려질지 모른다. 그 곳에 꽃이 피고 진다. 진주 조개는 살갗을 파고든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토해낸다. 우리는 꿈을 버릴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 그 곳은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가는 아픈 가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윤석철 객원기자 ysc@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