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청사 곳곳에 혁신의 칼바람이 거세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연공서열을 파괴한 인사가 단행됐고 고위공직자의 자리를 더 이상 보장하지 않겠다는 얘기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인사혁명의 시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창현(70)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이 서 있다. 참여정부의 출범과 함께 중앙인사위 위원장에 올라 인사혁신의 칼자루를 넘겨받은 조 위원장은 공무원의 기득권을 없애고 성과중심의 인사개혁을 이루겠다는 로드맵을 의욕적으로 실천, 참여정부의 인사혁명을 본궤도에 올려 놓았다. 내달 3년 임기를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가는 조 위원장을 19일 서울 무교동 중앙인사위 위원장실에서 만났다.
대담= 이은호 사회부차장 leeeunho@hk.co.kr
_고위공무원단을 만들고 연공서열을 파괴하는 현 정부의 인사혁신안을 직접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미국 유학시절인 1963년 아메리칸대에서 일본의 고등고시와 관련된 석사논문을 썼을 때부터 인사혁신은 제 평생의 화두였습니다. 인사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한 석사논문을 보고 미국의 인사위원회 표준국장이던 오글랜 스탈 교수가 하바드대에 저의 입학 추천했을 정도였어요(실제 하버드대에 가지는 않았다). 이후 조지 워싱턴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는 물론, 한국에 돌아와 행정학자로 살아가면서 여기에 계속 천착해 나름대로 식견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IMF위기가 터진 1997년 말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에 몸을 담게 됐는 데 이때 한국 경제위기의 뿌리는 공무원 인사제도의 후진성에 있다고 지적하고 중앙인사위를 만들자고 정부에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죠. 실망감 속에 학교로 돌아왔는데 2년이 지난 뒤 다행스럽게도 중앙인사위가 발족했어요. 그런데 이게 원래 우리의 구상에 훨씬 못 미치는 직원수 65명, 연간 예산 60억원의 초미니 중앙인사위였어요. 2002년 중앙인사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2003년 초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자리에서 명실상부한 중앙인사위로 만들 것을 요청했고 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참여정부의 인사혁신 로드맵 작성을 주도하게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에는 중앙인사위가 행정자치부로부터 인사 정책 및 실무기능을 모두 넘겨 받았고, 직원과 예산도 각각 355명과 930억원으로 커졌죠."
_공직사회 개혁에 대한 평소 소신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우리 공직사회의 기반이 되는 고시제도는 일본에서 가져온 것인 데 이미 일본은 2차 대전 후 이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폐기한 것을 우리는 60년 동안 껴안고 살아왔습니다. 고시에 붙으면 그냥 아무런 검증이나 교육 없이 사람을 퇴직할 때까지 씁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공무원 사회의 근본 문제입니다. 인사개혁의 첫번째 원칙은 휴먼캐피탈이라는 관점입니다. 사람은 잠재적인 능력을 가진 개체이지만 이들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부가가치가 다르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시를 통해 발굴한 인재가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이 힘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무원의 경력발전프로그램을 도입해 각자의 전문성을 쌓아가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두번째 원칙은 정부와 민간분야의 파트너십입니다. 정부와 민간분야가 네트워크를 갖추고 서로 도와야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를 맞출 수 있습니다. 세번째 원칙은 인사행정과 성과관리의 연결입니다. 지금까지 공직사회의 인사는 연공서열 나이 등 비인사적 요인에 의해서 이뤄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혁파하기 위해 내년부터 도입되는 고위공무원단(1~3급 공무원과 각계 전문가로 구성되는 인력풀)의 경우 일의 성과와 인사, 승진을 곧바로 연결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고위공무원단에 처음 진입할 때는 중앙인사위가 그 자질을 판단하지만 인력풀 가운데 선택하는 일은 전적으로 장관에게 맡겼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사가 이뤄지면 조만간 선진국 수준에 진입하고 삼성 같은 일류기업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일본 인사담당자가 중앙인사위를 방문해 고위공무원단에 대해서 듣고 "우리는 한국의 인사 시스템을 못 따라가겠다" 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_고위공무원단에 들어가 성과가 없거나 보직을 못 받으면 직권면직을 당할 수 있어 공직자들의 반발이 크다는 데요.
"일을 제대로 못하는 공무원을 직권면직할 수 있다는 규정은 과거부터 존재해 왔지만 이 이유로 파면된 경우는 단 1명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성과에 대한 평가가 취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위공무원단에 들어가는 공직자는 민간기업의 중역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월급도 많이 받고 특권도 뒤따르게 됩니다. 당연히 이에 합당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또 실제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1,500여명의 고위공무원단 중 2년 연속 최하위 평가를 받고 2년 동안 보직을 못 받아 직권면직 대상이 되는 수는 매우 적을 것입니다. 이들도 바로 인사조치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보충수업과 같은 재교육과정을 밟게 되고, 그 이후에도 2년 동안 보직을 못 받아야 면직됩니다."
_공무원 정년이 6급 이하는 57세, 5급 이상은 60세로 돼있어 차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공무원 정년 연장문제는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사실 정년 조정에 대한 찬반은 모두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인사정책은 반드시 미리 예고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정년조정을 통해 신규 공무원 충원 범위가 축소된 것을 안 구직자들이나 승진을 기대하고 있던 공무원들이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2년마다 1년씩 정년을 연장해 6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조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년을 연장하면 어쩔 수 없이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고 국고에 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꼼꼼한 계산이 우선돼야 합니다. 또 정년연장은 공무원 조직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해 이에 대한 국민정서도 감안해야 합니다. 특히 정년연장은 공무원 사회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방안과도 함께 맞물려서 검토해야 할 사항입니다.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기존 정년에 해당하는 나이에 도달하면 임금을 크게 깎는 것을 말합니다. 국회에서 심의하는 데 달려있겠지만 정년 연장과 공무원의 임금피크제 도입에 최소 1~2년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_최근 공기업 등에 일명 ‘낙하산 인사’가 잦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위원장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공기업의 사장을 선발하는 선발위원회를 부처별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인사가 오는 경우가 많은 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 낙하산 인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합리적인 선발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낙하산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이들 외부인사가 대체로 전직 공무원이고 정치인인 것을 두고 말이 많지만 사실 직무수행이나 경험을 두고 볼 때 이들은 뛰어난 인재입니다. 물론 정치적인 ‘빽’으로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온다면 그것은 시정돼야 할 것입니다."
_퇴임 후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대학에 가끔 출강하면서 행정학 교과서를 다시 쓰려 합니다. 정부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학자나 시민운동가로 활동할 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여러 사안을 두루 감안해 결정하는 일이 매우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과거 내 모습이 다소 단편적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내용을 새 교과서에 담으려고 합니다. 정말 행정학도들이 곧바로 응용할 수 있는 그런 책 말입니다."
정리=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조창현 위원장은 누구
조창현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은 평생동안 행정학, 그 중에서도 지방자치제와 인사혁신을 공부한 학자다. 30년을 넘는 세월동안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펨부록 주립대와 한양대에서 행정학을 가르치며 교단을 지킨 딸깍발이다. 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표를 지낼 정도로 비판적인 성격이어서 정부 일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그가 정부혁신추진위원회 위원장과 중앙인사위 위원장을 맡은 것은 의외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2차례의 공직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서울 삼성동 현대교회 장로인 그는 휴일이면 어김 없이 부인 정신자(62)씨와 교회에서 봉사활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조 위원장 부부는 두 딸을 두고 있고 올해 아흔인 노모를 지척에서 돌보고 있다.
1935년 전남 화순 출생
1958년 연세대 정법대 졸업
1968년 미 조지워싱턴대 행정학 박사
1968~1981년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펨부록 주립대 정치학 교수
1981~2001년 한양대 행정학 교수
1995~2002년 바른언론 시민운동 공동대표
1999~2000년 경실련 공동대표
1999년 한양대 부총장
2000~2002년 정부혁신추진위 위원장
2002년~현재 중앙인사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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