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 허문석(사진)씨가 의혹의 핵으로 떠올랐다. 특히 그가 개입해 정부에 허가를 신청한 사업마다 초고속으로 절차가 진행된 정황이 짙어 그 배후와 경위에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허씨에 대해선 석유지질학을 전공한 미국 박사로, 마두라 유전 개발에 참여했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시절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의 H고등학교 동기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이씨가 그를 5, 6년전 이광재 의원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최근 "단순히 아는 사이"라며 "그와 밀도 있는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동향(평창)인 전대월씨가 유전사업을 하겠다고 찾아왔을 때 "비즈니스 차원에서 석유 전문가인 허 박사를 만나보라고 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허씨나 허씨 주변에서 이 의원이나 권력 핵심부와의 인연을 강조한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철도공사의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이 유전개발사업을 "이 의원과 허씨 등이 밀어주는 사업"이라며 밀어붙인 것도 한 예이다. 허씨와 왕 본부장은 2002년부터 인도네시아 철광석 채굴사업과 관련해 알고 지낸 사이로, 이들은 당시에도 주변에 이기명씨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허씨는 지난해 10월4일 러시아 유전개발사업계획서를 제출해 당일 산업자원부 승인을 받아냈다. 철도공사가 러시아 알파에코사에 우리은행에서 대출받은 620만 달러를 송금한 날이다. 산자부 규정상 사업계획서 검토 기한이 7일이지만 이 건은 속전속결로 끝났다. 산자부 승인도 실무급인 과장 전결로 이뤄졌다. ‘보이지 않는 손’을 상정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허씨는 북한 모래채취사업과 관련한 통일부 승인도 따냈다. 허씨가 대표인 H&K에너지는 올 1월26일 통일부에 북한 모래채취사업 승인을 신청했고, 통일부는 다음날 승인서를 발급했다. 철도공사는 20년 동안 북한 모래를 운반할 수 있는 철도차량 수송권까지 보장했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는 광업진흥공사를 찾아가 비슷한 내용의 사업제의를 하기도 했다.
그는 또 일반인으로서는 만나기 힘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두 차례나 만났다. 정 장관은 "지난해 11월 허씨가 장관실을 찾아와 북한 모래채취사업 관련 계획을 전했고, 1월 중하순에는 북측 사람과 만난 경과를 얘기했다"며 "남과 북, 사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생각해 승인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허씨는 "신의주 행정장관직을 제의 받았다"고 얘기하는 등 힘을 과시하고 다녔다. 그는 또 감사원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출국했다. 이번 사건의 전모를 풀 열쇠인 그를 늑장 출국 금지시켜 해외로 나가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당연했다.
조경호기자 sooy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