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짝 관심…차라리 없애주세요"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린 지금의 장애인의 날을 폐지해 주세요."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충북 청주시 도심 상당공원.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앓고 있는 이응호(37)씨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 10여명이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2002년부터 매년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정하고 장애인의 날 행사를 거부하고 있는 ‘420 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투쟁단’ 충북 단원들이다.
경찰 진압 과정에서 이종일(48·뇌성마비 1급)씨 등 일부 단원이 쇼크를 받아 병원에 후송되는 아픔 속에서도 6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 오고 있다. 20일부터는 이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시민 50여명이 릴레이 단식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리로 뛰쳐 나온 이유는 장애인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해서. "날씨가 일년 중 가장 좋은 4월20일만 되면 협회 소속 장애인들을 모조리 불러내 수건과 음식을 나눠준 뒤 인터뷰를 하지요, ‘행복하냐’고. 그러면 장애인 중 십중팔구는 오랜만에 밖에 나오다 보니 ‘좋다’고 하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장애인의 날이 당국이 생색을 내는 행사로 변질되면서 장애인은 가장 행복해야 할 날에 무대 위의 꼭두각시가 돼 버린다"는 이규석(44·지체장애 1급)씨는 "동정의 눈길보다는 장애인이 자기 의지대로 살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정책적으로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년 중 장애인의 날을 뺀 나머지 364일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인간답게 살 수 있다면 굳이 장애인의 날이 왜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저상버스(차체 바닥이 낮고 탑승판이 장착된 차량) 조기 도입, 교육 지원 등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4대 요구안을 충북도에 내놓고 농성 중인 이들은 도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내달 10일부터 충북에서 열리는 제25회 전국장애인체전을 보이콧하겠다는 방침이다.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 곤봉던지기 부문에서 은메달을 딴 이응호씨가 단식 농성에 선뜻 동참한 것도 이런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충북장애인인권연대 공동대표 송상호(35)씨는 "장애인 복지사업에 소극적인 충북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화합을 외치며 체전만 성대하게 추진하는 것은 큰 모순"이라며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해 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당국과 정책 담당자의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청주=글·사진 한덕동기자ddhan@hk.co.kr
■ "장애인은 性생활 없나요"/ 성 도우미 나선 이훈희씨 "잠자리 준비 도움등 필요"
장애인의 성(性)욕구는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성문제는 지극히 생소할 뿐더러 심지어 담론마저 금기시돼 왔다.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지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서 성문제까지 사회가 해결해 줄 여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몸으로 뛰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장애인 성도우미’ 이훈희(33)씨. 그는 장애인의 성행위를 돕기 위해 준비단계에서 이동 및 탈의, 보조기구 구입 등 장애인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모든 문제를 도와주고 있다.
이씨는 "처음에는 직접적인 성행위만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비장애인이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기까지 자연스럽게 접하는 이성 간의 모든 과정이 이들에게도 절실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맡고 있는 역할은 다양하다. 직접 데려가 옷을 벗겨 주고 몸을 씻겨 주며 다시 숙소로 데려오는 것은 물론이다. 장애인이 원할 경우 성인용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해 주거나 성인용 잡지 등도 구입해 주며 장애인 부부의 잠자리 체위 변경을 돕기도 한다.
이씨는 1997년 우연히 알게 된 ‘어우러기’라는 뇌성마비 장애인 모임에 참가한 이후 줄곧 관련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 말 한 장애인 자립센터에서 만난 뇌성마비 1급 장애인 A씨가 "애인과 관계를 가지려는데 도와달라. 성생활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성도우미 역을 자처하게 됐다. 장애인 봉사활동을 7~8년간 해 왔으면서도 정작 이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감도 컸다.
그는 "애인인 비장애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모텔로 데려가 평생 처음 성 관계를 갖는다는 그를 2시간 동안 씻겨 주었죠.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씻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야 내가 장애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경험을 장애인 포털사이트 ‘에이블뉴스(www.ablenews.co.kr)’에 올렸으며, 다른 봉사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이씨는 "네덜란드는 장애인 성문제를 전문적으로 돕는 시민단체가 있고, 일본만 해도 인터넷을 통해 상대를 찾아주는 사이트가 활성화해 있다"면서 "우리의 경우 장애인이 이런 문제를 호소할 수 있는 아무런 통로조차 없어 결국 음성적이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이 동원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장애인의 날(20일)에는 장애인 20여명과 함께 서울 공덕동 로터리에서 열리는 ‘장애인 차별철폐 결의대회’에 참석해 장애인 성문제를 포함한 각종 불평등 해소를 정부측에 촉구하는 거리행진에 나설 예정이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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