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나게 포효하던 호랑이는 어느새 이빨에 발톱까지 빠져버렸다. 충격의 8연패. 프로야구 기아의 유남호 감독은 요즘 연방 줄담배다. 타들어 가는 담배처럼 그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갔다.
무엇이 우승후보로 꼽히던 기아를 종이 호랑이로 만든 걸까. 한마디로 탈출구가 안 보이는 총체적 난국이다. 믿을만한 불펜 투수가 없고, 상대 마운드를 압도하는 해결사도 없다. 투타 손발도 안 맞는다. 게다가 코칭 스태프들의 미숙한 경기운영도 호랑이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아는 12경기를 치른 18일 현재 3승9패로 최하위다. 단독 꼴찌는 1998년8월23일 이후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연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투타 불균형을 든다. 타선이 불을 뿜으면 투수가 무너지고, 마운드가 버텨주면 방망이가 침묵한다는 것이다. 투타에서 기아(팀 타율 2할5푼3리, 방어율 4.92)와 비슷한 성적을 내고 있는 LG(2할4푼6리, 4.89)는 6승6패로 4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대 마운드를 압도할 중심타선이 없다는 점도 유 감독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그나마 심재학(3할7푼8리 3홈런)이 제 몫을 하고 있지만 마해영(2할7푼) 이종범(2할6푼7리) 장성호(2할2푼4리)의 방망이가 너무 조용하다. 8개 구단 중 7위인 기아의 득점권 타율(2할2리)도 호랑이 팬들을 더욱 한숨짓게 한다. 특히 8일 잠실 두산전 0-1 패배로 시작된 8연패 중 1점차 패가 5경기라는 사실은 한방을 날릴 수 있는 해결사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못 믿을 ‘미들맨’들도 기아 부진의 한 요소. 8연패 중 역전패는 3차례다. 특히 기아는 연패 기간 동안 43실점을 기록했는데 이중 7회 이후 불펜 투수들이 내준 점수가 무려 20점이다.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하일성 KBS야구해설위원은 "6,7회까지 대등한 경기를 하다 7회 이후 불펜 싸움에서 밀려 다 잡은 경기를 놓치는 것이 기아의 문제’라며 "신용운 등 마무리가 살아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비상구는 없을까. 어서 연패를 탈출해야 한다는 조급증부터 버려야 한다. 허구연 MBC야구 해설위원은 "시즌 126경기 중 이제 겨우 10% 소화했을 뿐이다. 최강 삼성도 지난해 초반 10연패를 당하고도 한국시리즈에 갔다"며 "실패로부터 팀의 약점을 정확히 짚어내 고칠 수 있다면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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